박희태 국회의장이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의장직을 사퇴했다. 지난달 3일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이 채널A TV에 출연해 돈봉투 사건을 폭로한 지 37일 만이다. 국회의장의 중도 사퇴는 역대 다섯 번째지만 선거와 관련한 비리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한 것은 박 의장이 처음이다. 사상 초유의 국회의장 비서실 압수수색까지 당해 입법부 수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는 ‘고백의 글’(본보 9일자 보도)에서 그동안의 진술을 번복하고 사실대로 검찰에 진술했다고 밝혔다. 고 씨는 고 의원 측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은 뒤 김효재 당시 박희태 캠프 상황실장(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고백했다. 고 씨는 “책임이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책임이 있는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박희태 캠프가 전당대회 직전 수표 5000만 원을 현금화한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박 캠프의 제3 비선(秘線)사무실의 실체도 드러났다. 검찰 수사가 좁혀지던 상황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 의장은 고 씨가 진술을 번복해 더는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 씨 혼자 모두 끌어안고 가기를 바랐다면 너무 이기적이다.
이렇게 되자 김효재 수석도 결국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해외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전달됐다고 한다. 김 수석은 그동안 자신이 돈봉투 살포를 기획하고 지시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돈봉투 살포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고 이를 지시한 적도 없다”며 “검찰이 (언론에 흘리는) 습관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 같다”고 반박했었다. 하지만 고 씨의 새로운 진술이 나오면서 그의 주장은 믿기 어려워졌다. 박 의장까지 사퇴한 마당에 김 수석이 청와대에서 버티는 것은 구차스럽고, 자신을 임명한 이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도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사인(私人)으로 돌아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는 게 옳다.
이 대통령 측근이던 김두우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이어 김 수석까지 수사를 받게 돼 이명박 정권의 도덕성 논란은 더 커질 것이다. 국민을 경악하게 한 ‘돈봉투 정치’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키도 어렵다. 검찰의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