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남 증산군의 노동교화소에 딸린 야산이다. 노동교화소는 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를 모방한 곳이다. 탈북 등의 이유로 몇년 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거기서 상상할 수 없는 굶주림과 가혹한 채찍 아래 농사를 짓는다.
더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면 꽃동산에 묻힌다. 그곳엔 수만 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묻혀 있다. 한 구덩이에 여러 구씩 묻고, 묻을 자리가 없어지자 무덤 위에 또 묻었다. 꽁꽁 언 겨울엔 흙만 대충 덮는다. 시신을 비닐로 둘둘 말고 이름과 생일이 적힌 페니실린 병을 목에 묶어준단다.
땅위로 삐져나온 인골에 천조각과 비닐이 걸려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꽃밭을 연상케 해 수감자들은 꽃동산이라 부른다. 죽어서라도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는 처절한 염원을 담아.
흔히 북한 인권유린의 대명사로 정치범수용소를 꼽지만 그보다 훨씬 참혹한 곳이 교화소이다. 정치범은 종신노예다. 노예는 재산이다. 죽을 때까지 채찍을 맞으며 한 작업만 하면 엄청난 숙련공이 된다. 정치범수용소 생산품은 북한에서 질이 가장 좋은 상품으로 지배층에 진상된다.
반면 석방되면 사회로 나가는 교화소 죄수는 재산이 아니다. 북한 지배층에 이들은 ‘쓰레기’일 뿐이다. 박해로 많이 죽을수록 좋다.
탈북했다 체포돼 2000년 증산교화소에 끌려갔던 한 여성은 함께 입소했던 2000여 명 중 7개월 뒤 200여 명만 남았다고 증언했다. 다른 교화소들도 마찬가지다. 탈북자 수감 비율이 높은 함북 전거리교화소에서 1998년에 6개월 19일간 시신처리 업무를 맡았던 탈북자는 859구의 시신을 처리했다고 고백했다.
대다수가 영양실조로 굶어죽는다. 교화소에선 쥐, 벌레 등의 생명체도 멸종 직전이다. 수감자들이 눈에 띄는 족족 산 채로 입에 넣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죽을 날을 주먹으로 예측한다. 세운 주먹이 엉덩이 사이에 들어가면 허약 1기, 가로로 쥔 주먹이 들어가면 2기, 가로세로 동시에 들어가면 3기이다. 3기면 절대 살지 못한다.
그렇게 죽어가는 게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안다. 나 역시 탈북에 실패하고 정치범으로 몰려 보위부 비밀감방과 일반 구류장, 보안서(경찰)의 감옥과 노동수용소 등을 전전했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40kg까지 줄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가까스로 풀려났다.
남쪽에 와서 10년 동안 기자로서 북한에 관해 써왔다. 직접 겪어본 일이라 누군가의 운명에 가슴이 찢겨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이 참 많다. 북한은 내게 아픔이고 눈물이다. 힘들고 지칠 때도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자판을 멀리할 수 없다.
최근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 수십 명의 명단을 입수했다. 아, 그 아픈 이름들….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이후 탈북한 사람에겐 3대를 멸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은 탈북자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밀어버리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북으로 끌려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 위에 까마귀가 맴도는 꽃동산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기자이기 전에 지옥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호소한다. 평양에서 우상화물과 집단체조의 화려한 꽃물결을 보게 되거든 부디 노동교화소의 꽃동산도 떠올려 달라고. 오늘도 비닐에 싸여 꽃동산에 묻히는 이름 없는 주검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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