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이 강한 일진들은 스스로를 ‘一陣’이 아니라 ‘一眞’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진정 일등’이란 뜻이다. 꼭 주먹만이 아니다. 운동 춤 노래 외모 등에서 자기 나름대로 최고라는 아이들이 일진을 이룬다. 거기엔 성적 우등생도 자주 낀다. 일진 중엔 반장도 많다. 일진들은 주먹으로 학교를 평정하고 나면 모범생 영입에 나선다. 조직 위상을 높이고 교사로부터의 방패막이용이다. 서울 S중 일진 윤모 군은 “‘범생’이 끼어 있으면 선생님들도 크게 터치를 안 하고 ‘범생’ 엄마들은 입김이 세 유사시 우리 편을 들어준다”고 말했다. 모범생 처지에선 ‘노는 것도 잘한다’는 우월감을 얻고, 왕따 당할 걱정을 덜어 괜찮은 거래다.
▷교사에게 ‘비행 현장’을 들킨 일진들은 “집에는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을 늘어놓는다. 얼마 전 구속된 경기 여주시의 한 일진도 “소년원 가는 건 괜찮은데 주변에 알려질 게 두렵다”고 했다. 타인의 자존심은 사정없이 뭉개도 자신의 품위가 구겨지는 건 치명적이다. “때리면서 미안할 때도 있지만 ‘찌질하게’ 살 수는 없지 않느냐”는 허영기로 버틴다. 중앙대 청소년학과 임영식 교수는 “청소년기엔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특히 친구들에게 멋진 존재이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서열을 중시하는 학교에서 성적이 안 되면 힘으로라도 영향력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일진의 토대다.
▷성적으로 존재감을 발산할 수 없는 대다수 학생에게 일진은 공포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일진들이 입는 60만 원대 노스페이스 점퍼가 학생들의 ‘워너비 아이템’이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어른들이 사회에서 잘나가고 싶듯 아이들도 학교에서 폼 잡고 싶다. 일진 아래로는 이들을 호위하는 이진 삼진이 포진해 있다. 일진이 전학을 당하거나 소년원에 가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마이너리그 선수처럼 이들이 빈자리를 메운다. 사람이 바뀔 뿐 일진은 계속된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려면 ‘죽을 각오’가 필요한 이유다.
▷경찰이 학교폭력을 잡겠다며 일진 소탕에 나섰다. 일진은 잠시 사라져도 일진이 되려는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지금처럼 교실 안 경쟁이 치열할수록 아이들은 인정에 더 목말라할 테니 말이다. 일진의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던 이진 삼진들에겐 이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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