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스타 스트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3일 20시 06분


코멘트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의 열렬한 팬이라는 K 씨는 2010년 2월 그의 내한공연을 지켜보며 죽음을 예감했다. “그 무시무시하던 고음이 들리지 않았다. 휘트니가 두어 소절 부르고 나면 나머지는 대부분 코러스 팀이 불렀다. 거푸 물을 마시느라 노래는 계속 끊어지고…. 줄곧 ‘잘할 수 있는데 왜 안 되지’ 하는 표정이었다. 약물중독 치료 후 첫 재기(再起) 무대에서 ‘여왕’의 자존심이 구겨졌으니 행여 ‘이렇게 살아서 뭣하나’ 하는 마음을 먹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휘트니 휴스턴이 11일 호텔 방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48세. 자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인이 약물중독으로 추정되는 비참한 죽음이다. 1억7000만 장의 음반이 팔렸고 그래미상을 6번 받았지만 말년엔 약도 돈도 떨어져 주변에 “100달러만 빌려 달라”고 매달렸다고 한다. 20년 전 영화 ‘보디가드’에서 보여준 흑진주 같은 자태는 간 곳 없고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끔 목격된 그는 영락없는 노숙인의 몰골이었다. 결혼 실패에다 술과 약물이 미모, 미성(美聲), 생의 의지를 앗아갔다.

▷원광대 김종인 교수팀이 2001∼2010년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했더니 연예인이 65세로 최단명이었다. 1990년대보다 10세나 낮아졌다. 자살한 연예인은 통계에서 뺐는데도 이 정도였다. 출세를 향한 스트레스, 그리고 이른 나이에 돈과 명성을 얻으면서 자기 절제가 어려워진 게 수명 단축의 주 원인으로 꼽혔다. 가수 김장훈, 개그맨 이경규 등 여러 연예인이 앓았다는 공황장애의 주원인도 ‘만성화한 스트레스’다. 갑자기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연예인은 대개 스트레스성 탈모 환자다.

▷연예인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간다. 자기가 왜 사는지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떠밀려 살다 보면 어느새 발랄한 후배들이 앞 물결을 밀어내려고 들이닥친다. 스타가 존재 이유를 대중에게 ‘다걸기(올인)’하면 인기가 떨어졌을 때 그 순간을 못 견디고 약이나 알코올에 손대기 쉽다.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나도 따라 죽고 싶다’던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연예기획사 관계자가 전했다. 어느 여배우는 “어딜 가나 늘 카메라가 있다고 여겨 얼굴 각도며 손동작까지 의식한다”고 고백한다. 스타는 관중의 환호를 들으며 외줄을 타는 곡예사 인생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