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영세 자영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용카드 수수료를 낮춰 달라’는 건의를 받고 즉석에서 “인하 방안을 마련하라. 금융전문가의 사고방식으로는 못 풀고 정치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 때문에 ‘가격 문제를 정치 토론으로 결론 내는 게 옳으냐’는 논란에 불이 붙었다. 며칠 후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수수료를 낮추되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로 풀 것”이라고 말해 사태를 수습했다.
▷카드사가 백화점에 비해 영세 가맹점에 더 비싼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건당 평균 결제금액이 작아 관리 비용이 많이 들며, 일부 업종의 경우 돈을 떼일 가능성(대손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카드수수료를 억지로 인하하면 카드사들은 악화된 수지를 보전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나가는 가맹점과의 계약을 포기하게 되고 피해는 영세 가맹점에 돌아가기 쉽다.
▷가격통제 정책은 장기적으로 보면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다. 임대료를 규제하면 부동산 소유자들이 집을 새로 짓지 않고, 집이 낡아도 수리를 하지 않아 몇 년 후에는 셋집 구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제도권 금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면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은 더 비싼 금리로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가격을 통제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전시(戰時) 생활필수품 가격통제가 그것이다. 서민을 채무노예로 전락시키는 악질 고금리도 이자제한법에 따른 통제 대상이다. 대형 유통업체에 비해 영세 가맹점주들이 2배 이상의 카드수수료를 내는 것도 방관만 하고 있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부실 저축은행에 예금하거나 후순위채를 산 사람들에게 피해액의 55%를 보전해주는 법안을 만들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비판을 받은 국회 정무위원회가 이번에는 카드수수료를 단일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중소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전시(戰時) 생필품 가격 통제하듯 억지로 할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은 규제 권한을 주면 반가워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융위원회조차 “이런 식은 안 된다”고 말한다. 금융위는 대신 현금 고객에게 물건값을 깎아줄 수 있도록 해 카드사에 대한 가맹점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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