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캐스팅 보트를 쥔 충청권 표심(票心)을 잡기 위해 김종필(86·JP) 전 자민련 총재 영입에 공을 들였다. 은밀히 이회창 후보와 JP의 회동 일정을 잡았으나 이 후보가 막판에 거부했다. JP도 이회창 지지 선언을 접었다. JP의 선택이 이 후보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불과 57만표차로 뒤진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JP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손잡은 ‘DJP연대’로 이 후보에게 일격을 가했는데 이 후보는 또 JP를 놓친 것이다.
▷1980년 집권한 신군부의 2인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가택 연금 중인 JP를 은밀히 만나 2인자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2인자로 버틴 처세술이 궁금했던 것. JP는 “같이 걸을 때조차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나서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낙점(落點)’받는 과정에서 JP의 훈수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JP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사촌 형부다. JP와 박 위원장은 인척이지만 왕래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JP가 박 위원장과 거리를 두면서 불편한 감정이 쌓였다는 얘기가 나돈다. 박 위원장의 원로 ‘멘토’인 김용환 전 의원이 충청권 패권을 놓고 JP와 갈등을 빚고 있는 점도 불화의 한 원인일 것이다. JP는 2007년 대선 때 박 위원장 대신 사실상 이명박 후보를 밀었다. 세종시 수정 문제가 쟁점이 됐을 때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세종시 원안을 고수한 박 위원장을 우회 비판했다.
▷JP가 새누리당 명예고문직을 내놓고 탈당했다. 측근들에게도 새누리당 공천 신청을 접으라고 했다. 사실상 박 위원장에 대한 결별 통보인 셈이다. JP의 한 측근은 “가까운 곳을 못 챙기면서 먼 곳을 챙긴다는 게 말이 되나”고 박 위원장을 겨냥했다. JP는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를 만나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청권 판세를 건 마지막 줄타기 같다. JP의 ‘몽니’를 놓고 구시대 권력자의 노욕(老慾)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친박 인사들은 “이제 JP의 영향력은 끝났다”고 평가절하한다. JP의 마지막 선택을 놓고 설왕설래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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