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3년 인맥 어쩌고…씁씁한 주미대사의 마지막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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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0일 03시 00분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사의를 밝힌 한덕수 주미대사는 17일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서울에서 뉴욕을 거쳐 비행기를 20시간 타고 전날 밤 12시 가까이 되어 워싱턴 대사관저로 돌아온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급히 대사관으로 향했다. 집무실에서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사임 사실을 알렸다. 일본과 프랑스 싱가포르 등 주요국 미 대사들에게는 전화로 이임 인사를 했다. 그는 그동안 친분을 쌓아온 워싱턴의 주요 인사를 일일이 찾지도 못했다. 상원과 하원의 의회 지도자 등 60여 명과 싱크탱크 관계자들에겐 감사 서한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방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을 수행하는 대니얼 러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과 마이클 프로먼 백악관 NSC 국제경제 담당 부보좌관에겐 전화를 걸어 작별인사를 했다.

그의 이임 소식을 접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한 대사를 국무부 7층 장관집무실로 초청해 덕담을 건네고 기념사진을 찍는 호의를 베풀었다. 오후엔 대사관에서 전 직원을 모아놓고 이임식 행사를 열었다. 이어 오후 7시엔 워싱턴특파원들과 만찬 간담회를 하고 지난 3년을 되돌아봤다. 모두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20일 한국에 돌아가는 한 대사는 주미대사 3년을 이처럼 단 하루 만에 마무리했다. 주말에는 관저에서 짐을 싸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후 갑작스레 교체 통보를 받고 워싱턴으로 급히 날아온 그는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인중이 다 헐어 있었다. 16일 사표 제출에서 이날 이임식까지 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에게 떨어진 무역협회장 전보 인사는 주변 정리를 할 시간도 제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한 대사의 갑작스러운 교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주미대사 인사를 이렇게 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민간단체인 무역협회장으로 보내기 위해 주미대사를 차출하는 것은 청와대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다. 무역협회장은 청와대가 선임하는 자리가 아니다. 회원사들이 총의를 모아 회장을 뽑는다. 회장단이 모여 한 대사를 추대하는 형식을 갖췄지만 청와대가 간여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도 면할 길이 없다. 무역협회장 인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호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민간단체가 아닌 FTA에 권한과 책임이 있는 통상교섭본부장 같은 자리에 한 대사를 다시 임명하는 게 이치에 맞아 보인다.

인사 타이밍도 이상하다. 한미 동맹이 최상이라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한 대사는 물러났다. 새 주미대사가 업무 파악을 하고 일을 하려면 남은 10개월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및 의회의 주요 인사들과 안면을 트고 일을 할만 하면 새 정부가 출범할 것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를 비롯한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 대사의 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수많은 나라가 매일 물밑 전쟁을 치르는 워싱턴의 외교무대는 ‘사람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주미대사를 바꿀 경우 한 대사가 갖고 있던 워싱턴의 인맥이 차기 대사에게 전수될 수 없다. 한 대사는 한미 FTA 추진을 위해 지난 3년 동안 미국의 중소도시까지 누비며 ‘지한파’ 인맥을 만들어왔다. 그런 인적 자산을 차기 대사에게 인계할 여유도 없이 한 대사는 단 하루 만에 워싱턴 생활을 정리했다. 부랴부랴 워싱턴을 떠나는 한 대사를 보면서 그가 그동안 구축해놓은 워싱턴의 인맥도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지 안타깝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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