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전국한의사대회가 열렸다. 한의사와 가족 1만여 명이 참가해 97년 만의 최대 행사라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내빈 명단도 화려하다.
손건익 보건복지부 차관, 이희성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등 보건당국 최고위 인사가 모두 참석했다. 올해는 선거의 해. 정치인이 빠지면 섭섭하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황인자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을 비롯해 10여 명의 국회의원이 ‘자리를 빛냈다’.
이 정도라면 여흥이 빠질 수 없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개그맨 최효종 씨가 공연에 나섰다. 최 씨는 한방을 소재로 ‘개그콘서트’의 ‘애정남’ 코너를 재연했다.
“교통사고 났을 때 한의원 갈지, 양방병원 갈지 애매∼합니다잉! 제가 정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뼈가) 깨졌다 그러면 양방병원 가는 겁니다. 근데 겉은 멀쩡한데 어딘가 모르게 쑤시고 나도 모를 뭔가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한방병원 가는 겁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한 해법이다. 그런데도 최 씨는 더 나간다. 확실하게 한방 편을 든다.
“교통사고 후유증은 역시 한의원입니다. 매니저와 제가 2009년 12월 17일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매니저는 양방병원 가고 저는 한의원에 갔습니다. 저는 침을 맞고 그 친구는 깁스를 했습니다. 누가 더 빨리 나았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교통사고에 관한 건 이제 정한 겁니다.”
관객이 한의사들이니 ‘빵’ 터진 것은 당연하다. 탄력을 받은 최 씨의 개그는 ‘겁’을 잃은 듯 논란이 남아 있는 양·한방 업무영역까지 건드린다.
“의사들은 의료기사 지도권을 가지고 있는데, 국민에게 가까이 있는 우리가 갖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도 의료기사 지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이거 애매한 것 아닙니다. 딱 정한 겁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부터 협조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오늘부로 어디가 아프든지 무조건 한의원 가는 겁니다.”
한의사들은 “애매한 것을 명쾌하게 정해줬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뒤늦게 동영상을 접한 의사들은 일제히 최 씨를 성토했다.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거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식이다. 일부 의사는 최 씨의 소속사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가 커지자 최 씨 담당 매니저가 “우리 모두 의료법을 알지 못했다. 시나리오대로 진행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행사에 나가면 보통 주최 측이 주는 시나리오에 따라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매니저는 “기분이 언짢았다면 매니저로서 사과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의사들은 “웃자고 한 개그에 의사들이 죽자고 달려드느냐”고 말한다. “개그맨이 흥을 좀 돋운 걸 가지고 야박하게 그러느냐”는 속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개그맨을 이용해 민감한 사안을 희화화한 한의협의 의도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들의 항의가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개그가 맘에 안 든다고 남의 잔치 흥을 깰 것까지 있을까. 설령 항의한다 해도 그 대상은 개그맨이 아닌 행사 주최 측이다.
케케묵은 양·한방 갈등을 국민 대부분은 밥그릇 싸움으로 여기고 있다. 국민은 그들이 음지에 숨어 서로 빈정대지 말고 정정당당히 논쟁하고 토론하기를 원한다. 툭하면 충돌하는 모습에도 질렸다. 이번 해프닝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유머를 유머로 즐길 줄 안다. 이 여유를 의사와 한의사 집단도 가졌으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