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사랑만큼 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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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3일 03시 00분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눈 한번 질끈 감고 넘어가기엔 충격이 너무 크다. ‘카더라 통신’(프로 스포츠에 승부 조작이 만연해 있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프로축구 파문 당시 “야구는 승부 조작이 절대로 불가능한 종목”이라고 큰소리쳤던 프로야구가 아닌가. 여자선수들도 연루된 프로배구는 설상가상이다. 검찰은 “프로농구는 아직 포착된 정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에선 프로농구도 버젓이 ‘성업’ 중이라 농구인도 좌불안석이다.

누가 ‘스포츠는 정직하다’고 했던가. “승부 조작이 아니라 일부 선수의 경기 조작이었다”는 변명은 구차하다. 전문가가 녹화 화면을 몇 차례 봐도 알쏭달쏭할 정도로 완전범죄를 노렸기에 더 괘씸하다.

소는 잃었더라도 훗날을 위해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 스포츠팬들은 너무 착하다. 관대한 팬들 덕분에 선수 58명이 영구 제명된 프로축구 K리그는 지난 시즌을 무사히 마쳤다. 총 관중(약 271만 명)과 경기당 평균 관중(약 1만1300명)이 3%씩 2010년보다 되레 늘었다. 승부 조작 파문이 확산되고 있던 12일 열린 프로배구 삼성화재-현대캐피탈 경기는 이번 시즌 V리그 최다 관중(6485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680만 관중을 넘어섰고 해외파 스타들이 대거 복귀한 올해 700만 관중 돌파를 낙관하고 있던 프로야구는 출범 30주년 만에 최대 악재를 만났지만 난관을 뚫고 나갈 ‘저력’은 충분하다.

그런데 ‘짝사랑’은 외롭고 힘들다. 지치면 결국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고위층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저명인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보다 남녀노소 광범위하게 주목받고 있는 스포츠 스타야말로 명심해야 할 덕목이다. 타이거 우즈는 잇따른 성 추문으로 최근 ‘미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스포츠 선수 톱10’ 중 당당히 2위에 올랐다.

문제는 앞으로다. 때늦었지만, 불법 사이트를 통해 베팅만 해도 5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돼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비리 고발자에게 최대 포상금 1억 원 지급 등을 담은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조성 대책’이 21일 발표됐다.

하지만 사정(司正) 당국에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잡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것은 철저한 단속과 수사를 위한 ‘투자’다. ‘도둑 한 명을 장정 열 명이 못 막는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범인(불법 베팅 사이트)을 어찌 일개 검찰청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더더욱 중요한 점은 환부(患部)는 뿌리를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창원지검은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 조작 브로커와 가담 선수는 적발했지만 사건의 몸통인 전주(錢主)는 잡지 못했다. 의사가 메스로 위암환자의 배를 열고 보니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있어 작은 종양 몇 개 제거하고 황급히 덮은 격이다.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 베팅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근간(根幹)을 뒤흔드는 심각한 범죄다. 해마다 전국 지검에서 이런 범죄가 계속 불거져 나온다면 한국 스포츠는 공황(恐慌)에 빠질 것이다. 올해에는 총선과 대선이 잇따라 치러진다. 검찰이 선거 사범 수사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또 대충 덮을지, 아니면 이번에는 제대로 철퇴를 내릴지 지켜보자.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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