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식사 자리에서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다” “우리는 강소국을 지향한다” 이런 말이 나왔다. 동석한 외국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국인들, 너무 겸손한 것 아닙니까”라고 한마디 했다. 한국은 작년에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 9번째다. 전체 경제규모는 세계 10위다. 이런 숫자가 얘기해주듯 사실 한국은 이제 ‘작은 나라’가 아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세 가지 편중, 또 하나의 장벽
그러나 마냥 기뻐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무역의존도((수출+수입)/GDP)가 87%에 이르다 보니 외풍(外風)에 너무 민감하다. 그렇다고 교역의 외형을 줄여서 균형을 맞춰야 할까. 그건 안 된다. 내수(內需) 키우기의 속도를 내는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한국경제가 외풍에 취약한 것이 꼭 무역의존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이유는 뭘까.
첫째, 수출은 대기업 몫이다.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는 36%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70%, 독일은 82%, 중국은 72%, 대만은 56%다. 수출 대기업의 ‘홀로 성장’은 양극화의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에 뿌리를 둔 글로벌 컨설팅 기업 지몬-쿠허&파트너스의 헤르만 지몬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는 ‘숨겨진 챔피언 기업’이라 할 글로벌 강소기업이 너무 적다. 독일은 100만 명당 글로벌 챔피언 기업이 15.5개인 반면 한국은 0.5개에 불과하다.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수출형 국가가 되려면 선도 강소기업이 수천 개는 아니더라도 수백 개는 필요하다.”
둘째, 수출품목 편중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주력 품목 10개가 차지하는 비중은 51%나 된다. 무역 1조 달러 클럽 멤버(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한국) 중에서 한국 말고 8개국은 모두 35% 이하다. 10개 품목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제대로 수출하는 품목은 6개(선박 유화 반도체 LCD 자동차 휴대전화)뿐이다. 대개 경기(景氣) 변동에 민감한 품목들이다. 서비스 수출은 정말 미미하다.
셋째, 수출대상국도 편중됐다. 중국이 30%이며 이 숫자는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 미국 일본 동남아 유럽연합(EU)을 합하면 75%다.
넷째, 생각지도 않았던 걸림돌이 하나 더 생겼다. 교역을 바라보는 국민 컨센서스의 이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사람들 얘기다. ‘교역과 개방을 통한 고속성장의 롤 모델’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무슨 이런 일이 있는가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니 나라 경제가 수출 대기업 몇 개에 목을 매고, 반도체 국제가격에 코스피가 들썩이며, 중국이 기침 하면 동네 구멍가게까지 몸살을 하는 것이다. 계속 이러면 우리 경제가 웃자란 겨울보리처럼 꽃샘추위 한번에 얼어버릴 수도 있다. 물량이나 순위 경쟁이 아닌 ‘교역의 질’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중국과 같은 시장서 이대론 당한다
우선 서비스산업 선진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지난 10년간 서비스수지 적자가 800억 달러다. 의료, 물류는 당장 수출해도 되지만 규제가 문제다. 금융서비스도 수출의 여지가 크다. 서아시아 중동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남미는 수출 사각지대다. 지역을 다변화해야 한다. 기술력과 창의력을 갖춘 수출 강소기업을 키워내야 한다. 제조업도 기초과학이나 창의와 문화를 기초로 한 분야에서는 뒤져 있다.
정말 시급한 것이 있다. 중국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의류 완구 신발 등 경공업제품 중심이던 수출구조를 2000년대 들어 컴퓨터 가전 선박 등 ‘한국형’으로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값싼 임금과 자원으로 우리가 선점한 시장을 잠식할 날이 머지않다. ‘값싸고 질 좋은’ 제품만으로는 대응이 안 된다. 아이폰, 갤럭시처럼 창조적인 제품을 개발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한미 FTA 대해서는 더 언급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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