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총액이 지난해 말 913조 원으로 900조 원을 넘어섰다. 1인당 1900만 원, 가구당 5200만 원꼴로 빚을 진 셈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도 빨라 지난 5년간 해마다 10%씩 늘어났다. 부채의 질이 나빠진 것도 걱정스럽다. 재작년에는 금융부채가 가처분소득의 103%였으나 작년에는 110%로 악화했다. 이자가 은행보다 높은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 빚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을 규제하면서 나타난 풍선효과다. 신용카드 대출 증가도 우려스럽다. 카드 외상도 무서운 빚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가계 파산뿐 아니라 은행이 부실화하면서 금융위기, 나아가 총체적 경제위기로 번질 수 있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화는 이듬해 글로벌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가계부채 증가세의 고삐를 죄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그러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채무자들이 연체로 내몰리면 은행 위기를 부르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면 부채 증가세는 더 빨라지고 물가도 뛴다. 진퇴양난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가계 사정이 좋아져야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금융회사들의 무분별한 가계대출이나 신용카드 남발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빚이 있는 개인과 가정의 필사적인 자구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대출 규제를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DTI 규제는 작년 4월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다시 강화한 제도다.
가계부채뿐 아니라 정부와 공기업 부채도 크게 늘어 작년 9월 말 789조 원에 이르렀다.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어지면 파산으로 내몰릴 곳이 적지 않다. 개인이든 정부든 빚이 많으면 안팎의 경제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어진다. 나랏빚을 급격하게 증가시킬 소지가 농후한 과잉 복지 정책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