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돈을 한 100만 원 정도 받고 싶다. 왜냐하면 50만 원으로 산악자전거(MTB)를 사서 매일 산에서 쌩하고 달리고 싶다. 또 돈이 남으면 저금을 해 이자가 많아져 돈을 빌려주고 이자까지 갚으라고 하겠다. 갑부가 돼 도박과 포커도 해서 돈을 많이 따 불우이웃돕기운동을 벌여 거지가 없게 하고 협상을 해서 우리 문화재를 모두 찾아와 박물관에 기증할 거다.”
모 백일장에서 ‘용돈’이라는 시제로 쓴 초등학교 5학년생의 글이다. 나는 놀랐다. 그 솔직함에 놀랐고, 돈에 대한 집착에 놀랐고, 돈을 벌고 쓰는 그 황당한 방법들에 놀랐다. 돈이라면, 너나 없고 위아래도 없는 만인의 지치지 않는 목표이긴 하다. 무엇보다 돈에 관한 아이들의 눈이 하늘 높은 줄 땅 넓은 줄을 모른다. 청소년 폭력의 팔 할은 용돈이나 유흥비 마련을 위한 가장 쉽고 가장 빠른 방법모색의 결과물들이다. 그나마 ‘건전한’ 청소년들은 ‘갑부’ 연예인이나 ‘갑부’ 스포츠맨을 꿈꾸며 성형외과와 오디션과 대회를 배회하고, 그 귀하고 드물다는 ‘엄친아’들 또한 ‘고액 연봉’을 꿈꾸며 눈에 불을 켜고 학원가를 떠돈다.
“돈이면 최고” 금전만능 부추기는 사회
이 아이들이 과연 누구의 거울이겠는가. 전당대회의 약자 ‘전대(全大)’가 말 그대로의 ‘전대(錢大, 纏帶)’였던 돈봉투 게이트는 이쯤에서 셔터를 내릴 모양이다.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서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그리고 국회의장까지 ‘불구속’ 기소됐으니 ‘고마 됐다’, 싶은가 보다. 고위공무원에게 5만 원권 100장씩 6다발의 3000만 원이 든 한우갈비세트를 전달하려다 덜미가 잡힌 조경업자와 그 배후의 대형 건설사 상무가 ‘구속’ 기소됐다. 하긴, 이렇게 오가는 돈가방이나 돈상자들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300만 원 정도의 돈봉투는 ‘껌값’이라 할 만하다. 5만 원권 하니 떠오른다. 도박 사이트 물주가 마늘밭에 묻어두었던 110억 원! 바야흐로 밭떼기의 규모가 되었다. 아, 실종된 20조 원이 넘는 5만 원권들은 대체 다 어디에 묻혀있단 말인가!
요즘 대세는 돈빌딩이다. ‘송○○, 86억 집테크’ ‘서○○, 300억대 연예인 최고 빌딩부자’ ‘박○○, 빌딩 투자로 100억대 벌었다’ ‘전○○, 빌딩 투자 3년 만에 44억 벌어…임대수입도 짭짤’….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튀어 들어오는 제목들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뻑’ 하면 10억 100억 하는데, 44억 원이란 연봉 5000만 원(모든 청춘들의 로망이다!)의 샐러리맨이 물 한 통 안 사먹고 88년(한 인간의 한평생이다!)을 모아야 하는 돈이다. 100억 원이란 연봉 2000만 원을 500년(조선왕조가 500년이었다!)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한 번의 ‘투자’로 그리 쉽게 벌어도 되는 걸까.
또 있다, 돈 공약!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신생아에서부터 유치원생은 물론이고 고졸 청년, 취업준비생, 젊은 창업자들, 그리고 사병들에게도 금일봉을 주겠단다. 심지어 ‘한류’에 힘쓰는 연예인들에게는 집도 사주겠단다. 국민들 혈세 걷어 선심 쓰며 나눠주는, 나눠주다 돈 떨어지면 이제 그만, 손 털면 그뿐인 정책이란 정책이랄 것도 없다. 정직하게 돈을 벌고 쓰고, 그 돈이 투명하게 돌도록 하는 시스템과 제도적 입안이 모름지기 정치가들이 공약해야 할 정책들이다.
지질한 인생을 한 방에 갈아타기 위해 주식사기를 벌이는 범죄 스릴러물 ‘작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환율급등, 주가폭락, 실업증가, 고물가 등 총체적 불황과 맞물린 시의성도 한몫했을 것이나 정작 그렇게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던 진짜 이유는 뭐였을까. ‘큰 거 한판에 인생은 예술이 된다!/ 목숨을 걸 수 없다면, 베팅하지 마라!/ 인생을 건 한판 승부.’ 전문사기도박꾼 ‘타짜’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 ‘타짜’의 태그라인이었다. 장삼이사의 ‘타짜’들이 벌이는 이런저런 ‘작전’에 관한 한 우리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스럽다. 검디검은 ‘쩐의 전쟁’은 재앙의 뿌리
‘용돈’이라는 글을 읽었을 때,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로 시작하는 ‘비디오 헌장’이 떠올랐다. 불법 비디오의 위험을 알려주던 그 구절 말이다. “인생 로또!” “돈을 갖고 튀어라” “돈으로 안되는 게 뭐 있어?”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풍속들이야말로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의 뿌리다. 게임, 마약, 에이즈보다도 더 유해하고 전염성이 강한 게 돈봉투와 돈상자이고, 온갖 투기와 사기이고, 사채와 도박이다. 검디검은 ‘쩐의 전쟁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이 사회야말로,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19금’의 사회가 아닐는지. 초등학교 5학년생이 천진난만하게 이자(사채)와 도박과 포커를 꿈꾸는 이 사회는, 그 솔직함은 어쩐지 섬뜩하기만 하다. 이 아이가 도대체 누구의 거울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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