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어트겅체첵 담딘슈렌]말의 차이, 문화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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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일 03시 00분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교수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교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6500여 종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에는 사용되는 것보다 사라지는 과정에 있는 언어가 더 많다. 언어는 사용하는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널리 사용되기도 하고 그 수명이 다하기도 한다. 언어는 대체적으로 민족의 문화, 생활방식과 연계되어 깊은 정체성을 갖게 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현대 어휘의 상당 부분은 문화,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창출되었고 반면에 예전에 익숙하던 어휘들의 많은 부분은 문화의 변화에 따라 사라졌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주거지가 일정한 공동 생활사회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어 속에도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배어 있는 상호의존적 어휘와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몽골인들은 유목을 하면서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고 드넓은 초원에서 홀로 살아간다. 그래서 몽골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에는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표현이나 어휘가 많다.

두 나라의 언어가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같은 말을 얼마나 다르게 표현하는지 일상 표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상대방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어에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잠깐 얻어 쓰고 돌려줄 상황이면 “사전 좀 빌려 줄래요” “볼펜 좀 빌려 쓸게요” 등의 문장에서처럼 항상 ‘빌리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하지만 몽골어에서는 이런 상황이면 그냥 ‘주세요’(어거-츠)라고 표현한다. “사전 좀 주세요” “볼펜 좀 주세요” 등의 식이다. 몽골어에서는 돈만 빼고 ‘주세요’라는 말을 쓴다. 이 말에는 남의 것을 아예 가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깐 빌려 달라는 의미가 있다.

가축을 기르며 사는 유목민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늘 풀이 풍부하고 물이 넉넉한 곳으로 이동한다. 유목의 특성상 새로 이동하는 곳은 주변의 집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빌리고자 할 때 말을 타거나 오래 걸어가서 옆집으로 가게 되는데 날씨가 일정하지 않아 갑자기 눈이 오고 태풍이 몰아칠 수도 있으므로 빌려간 것을 당장 돌려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거리와 자연환경을 고려해 ‘주세요’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반면에 한곳에 모여 정착생활을 하는 문화에서 쓰는 ‘빌리다’라는 표현은 사람이 밀집해 살수록 서로를 배려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보여준다.

언어의 이런 세밀한 뉘앙스는 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혼동과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다. 몽골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한 한국 학생이 만두를 쪄 먹고 싶어서 옆방 몽골 학생에게 “찜통 좀 빌려 줄래요”라고 했다. 그 몽골 학생이 그 문장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한국 학생은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한국 학생 입장에서 모국어로 생각하고 옮기면 절대 웃음거리가 되는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웃고 신기하게 나를 보나’ 싶어 화가 나서 오히려 그 몽골 학생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몽골어는 계통적으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알타이제어에 속하며 유형상 교착어이고 문법 구조도 한국어와 유사하다. 그리고 많은 문법적인 관계와 기능면에서도 유사한 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표현법은 두 나라의 문화적인 배경과 여러 다른 생활방식, 풍습이라는 측면으로 인해 전혀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에서 오는 차이점에서 비롯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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