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 A 씨의 아버지가 1일 전화를 해왔다. 북송위기에 처한 자식의 구명을 위해 뛰어다니느라 가뜩이나 제정신이 아닌데 최근 자식의 실명을 쓴 언론보도가 여기저기 퍼지는 바람에 그것을 막느라 더욱 경황이 없다고 했다. 몇 번씩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한 뒤에야 마지못해 관련기사를 내리는 언론사들도 있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실명이나 얼굴 등 개인정보 공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신상 공개가 북에 있는 가족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처럼 명예훼손이나 경제적 피해, 정정보도나 피해보상 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지난해 서울고법은 자신들의 신상을 언론에 공개하는 바람에 북에 있는 가족 26명이 실종됐다며 탈북자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1억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천문학적인 배상을 받는다 해도 가족을 잃은 울분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가족이 피해를 볼까 봐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탈북자들을 기자회견장으로 내몰던 1990년대와 비교하면 사정이 몰라보게 나아졌다. 당시엔 누군가가 남쪽에서 탈북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면 북에선 수십 명의 일가족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었다.
과거에 비해 대다수 언론이 신상 공개에 매우 신중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대형 이슈로 떠오르면서 체포된 탈북자나 한국 가족들의 실명, 나이 등을 무책임하게 쓰고, 미확인 소문과 민감한 대목을 경쟁적으로 써대는 언론이 여전히 눈에 띈다.
탈북자 구명을 위해 구명운동이 어쩔 수 없이 공개리에 벌어지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지 못한 기사 한 줄, 말 한마디로도 귀한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언론과 관련단체들이 더욱 깊이 새기기를 호소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