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4월 11일 국회의원 총선거, 12월 19일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선거의 해’다. 여야 정치권은 당장 발등의 불인 총선에 다걸기하며 각종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여야는 각각 자기들에게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들기 위해 선거 일정의 차질까지 빚어 가며 이전투구를 벌이다 결국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열어 젖혔다. 그나마 당리당략에 따른 게리맨더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월 27일 ‘4·11총선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 ―4·11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고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습니다. 여야는 그야말로 영혼이라도 팔 작정이라는 듯 포퓰리즘적인 법안과 공약을 앞다퉈 쏟아 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개혁공천도 말뿐인 듯합니다. 정당은 정당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사생결단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신문이 어떻게 중심을 잡고 보도해야 할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진강 위원장=4·11총선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12월 대통령선거와도 연계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언론 보도가 공정성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법규뿐만 아니라 언론 스스로도 규정해 놓은, 언론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론이 소극적으로 그런 규제를 받는 데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선거문화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 유권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돕는 것이 선거 보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언론의 사명입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동아일보는 연초에 채널A와 함께 공정한 선거 보도를 약속했습니다. 그에 따라 정치주식시장을 개설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민심 흐름을 파악하고, 기존 여론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포함한 여론조사도 적극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또 각 당의 공약과 흑색선전을 검증하기 위한 ‘팩트 체크’에 큰 비중을 두고 보도하겠습니다.
이주향 위원=도대체 뭐가 공정한 걸까요? 보수 신문이든 진보 신문이든 다 공정하다고 할 거예요. 근데 독자는 느낌이 다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찾는 데는 공정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10여 년 전만 해도 동아일보 같은 유력 신문이 여론을 이끌었지만 요즘은 아니에요. 왜냐면 SNS나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여론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트위터를 하는 사람, 특히 따름벗(팔로어)이 많은 사람 중엔 정말 정치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정치적인 파장을 생각해서 글을 올리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기자들은 ‘내가 왜 기자가 되려고 했는가’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세월을 질료로 삼아 기사를 쓰는 것이 공정성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률 위원=서구의 언론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속으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는 보수를 지지하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진보를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공정을 외치는 아이러니, 이런 자가당착에 대해서 언론은 한번 문제를 제기해 보아야 합니다.
이 위원장=선거에서의 공정성은 기회 균등의 원칙일 뿐입니다. 이쪽 사람을 한 번 다뤘으면 그 상대편도 그만큼 다루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이 기회 균등의 원칙이 확고하게 정립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도 선거 보도에서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공정사회’라는 개념으로 확대하지 말고 기회 균등의 원칙을 잘 확보해 준다는 차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 위원=미국에 기회 균등의 원칙이 있지만 언론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이젠 지켜지지 않습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마당에 기계적 중립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과 군소 정당을 같이 놓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우리나라에서도 그 부분은 상당히 벗어난 것으로 봅니다. 1987년 대선에서만 하더라도 글자 수까지 똑같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원시적인 수준의 공정성이었죠. 그렇게 똑같이 했더라도 내용이 다르니 한쪽에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뒤로는 그런 식의 의미 없는 공정성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선거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죠.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SNS나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거의 무제한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에 따른 역기능도 우려됩니다.
김 위원=기본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트래킹 리서치’를 해야 합니다. 어떤 후보자가 4년 전에 과연 뭐라고 얘기했는지, 다시 말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時)계열 조사를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또 각 신문이 진보면 진보, 보수면 보수로 더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신문이 공정하게 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적인 중립이나 형평성에서 벗어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이 위원=공천이 끝나고 공약이 나오면 그 흐름을 대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틀이 있을 겁니다. 이런 분석과 비판을 할 때는 각 당을 지지하는 성향의 인사에게 맡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통합당을 비판할 때는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칼럼니스트에게 맡기는 겁니다. 애정 있는 사람의 질책이기 때문에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면 공정성도 어느 정도 확보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 반대가 되면 안 됩니다.
이 위원장=이념이 전면에서 춤을 추다 보니 국민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국민이 이념의 덫에 걸려 혼란을 겪지 않도록 고급의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전문가가 아닌 건전한 일반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여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걸 지상 중계하고 그에 대한 일반 독자의 의견을 다시 지면에 반영하면서 큰 방향을 잡아 가도록 했으면 합니다. 마치 수백, 수천 마리의 개미가 누구의 지휘도 없이 커다란 먹이를 옮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위원=신문의 생명은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모든 사람이 매체를 갖고 있는 현 상황에서 비판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비판이나 비난에 질려 있습니다. 정치인이 다 나쁜 사람은 아닐 테니 그들 속으로 들어가, 요즘의 화두인 ‘공감’이나 ‘치유’를 접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 위원=정치인이 선거 과정에서 발가벗겨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나쁘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는 ‘덜 나쁜 사람’을 뽑는 과정이고 검증 과정입니다. 언론을 ‘제4부’라고 하는 것은 언론의 감시기능 때문입니다. 선거 보도에서도 검증과 감시기능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여력이 있으면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한 어젠다를 끌고 가야 합니다. SNS와 관련해서는 최근의 채선당 사건이나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서 유권자들에게 학습효과가 생겼다고 봅니다. 몇 차례 비슷한 경험을 해 봤으니 이제는 근거 없는 소문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선거 막바지에 악성 루머가 SNS 등을 통해서 퍼지고 그 영향을 받은 채 결정이 나 버려도 시정하기 어렵습니다. 자체 검증이 되고 정화가 된다고 하지만 염려스럽습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과정에서 나온 ‘나경원 후보 1억 원 피부과 시술’ 건이 좋은 사례입니다. 학습 효과를 기대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위원장=방송은 선거 보도를 할 때 해설에서도 자사의 의견을 밝힐 수 없도록 각종 법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은 어느 정도 의견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동아일보가 한번 선거에 대한 의견을 밝혀 봤으면 합니다.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을 돕는다는 측면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문화, 선거문화를 바꾼다는 큰 차원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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