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미국을 방문하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2월 29일 발표된 북-미 합의문에 한국을 무시하려는 북한식 통미봉남의 그림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강성대국이라는 구호에 걸맞은 선물이 필요한 북한 신지도부는 영양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도 일단 북한 문제를 봉합하려고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는 모습이다. 재선을 위해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란 핵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 동맹국인 미국과 대화의 창을 열었다는 것은 어쨌든 환영할 일이다. 북한이 중국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우리 외교부는 본격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시험대에 올랐다.
北, 통미봉남으로 한국 무시 전략
우리 국민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는 외교수장에게 남다른 수완을 주문할 만한 이유가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협상에는 참여도 못하고 경수로 비용의 70%나 부담한 답답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곧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의장국을 자임하는 한국이 정작 북한 핵 문제 해결은 주도하지 못하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북한은 한미관계가 느슨해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더 대담하게 무력 도발을 운운하며 우리를 협박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이란 제재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의 조정도 쉽지 않고, 탈북자 북송 저지도 미국의 협조가 시급하다. 게다가 최근 외교부에는 난제가 쌓이고 있다. 협력 수준을 높여야 할 일본과는 영토 문제와 역사 왜곡의 암초에 발이 묶여 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약속한 중국은 천안함 폭침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늘 북한 편을 들어 주었다. 활발한 통상외교로 경제영토를 크게 넓힌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와 주변국 외교에서는 어려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럴 때 한미공조를 강화하고 북한 핵 문제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묘약은 무엇일까.
일각에서 말하는 5·24 조치의 조건 없는 해제와 대북 원칙론의 전면 재검토는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우선 현 정부를 ‘역적패당’이라고 몰아세우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꿀지 의문이다. 북한은 현 정부에 징벌적인 강경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차기 정부가 유화노선을 선택하도록 양대 선거에 개입하려 할 수 있다. 대북 원칙론자들도 북의 잘못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쉽게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우리 장관은 곧 서울에서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이번 기회를 활용해 한미 간 긴밀한 대북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우선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의 병행 원칙을 미국 측에 주문해야 한다. 그리고 기나긴 북한의 비핵화 여정에서 이번 합의가 갖는 의미와 향후 로드맵에 대한 양국의 공감대를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합의가 식량 원조만 받고 한미 양국을 이간질하려는 기만술이 아닌지 미국과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이 중국 편향에서 벗어나 대미외교의 공간을 탐색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양국 장관의 성명서에서 탈북자 인권 보호에 한목소리를 낸다면 대북 공조정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미-남북대화 병행’ 美에 주문을
동맹은 상호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갖출 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한미 FTA, 이란 제재 동참, 한미일 군사협력 발전 등 현안에서 미국 측이 합리적인 요구를 할 때는 국내정치적 고려에만 매달리지 말고 수용하는 용기도 발휘해야 한다. 중국 눈치만 보느라 미국의 숙원인 한미일 협력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동맹의 전략적 목표 인식은 낮은 수준의 정책 공조를 낳는 법이다. 새봄이 오는 3월 초,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한반도 안정의 물꼬를 여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길 기대해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