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이 3·1절과 8·15 광복절 같은 국경일을 골라 무한질주를 하는 데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폭주족은 오토바이 강국 일본에서 ‘민폐 문화’를 들여오면서 저항과 해방의 이미지도 빌려왔다. 일본 폭주족은 경찰 단속에 항의하며 경시청 주변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여 일부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 통행권을 받아냈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자’는 일본인 특유의 의식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를 모방한 우리 폭주족에게 3·1절과 광복절은 저항과 해방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기념일인 셈이다. 일본의 압제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날 일본 무법자들의 반항 정신을 흉내 낸다니 난센스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던 선배들과는 달리 10대가 80%인 요즘 폭주족들은 보다 사사로운 이유로 달린다. 1일 폭주 단속에 걸린 중학교 중퇴생(16)은 “내 오토바이에 제대로 쩐(위협을 느낀) 운전자들이 대차게 욕을 해대면 왠지 우쭐해지고 주목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역주행이나 칼치기(자동차 사이 비집고 다니기) 훌치기(S자로 차선 넘나들며 겁주기) 같은 기술을 구사하며 이들이 바라는 건 우월감과 주변의 관심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김홍주 폭주족수사팀장은 “폭주족을 잡아 보면 결손가정 청소년이 대부분이고 부모에게 연락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경찰 사이렌 소리마저 폭주족들에겐 관심의 함성으로 들린다. 경찰이 뒤쫓아봐야 술래잡기의 전율만 키워주고 사고 위험도 크다. 단속은 현장 검거에서 교화 및 사후 적발로 진화했다. 서울 여의도 등 집결지를 찾아 간식을 주며 준법운행을 당부하는가 하면 폭주족 검거용 페인트총까지 개발했다. 페인트 흔적을 오토바이에 남겨 추적수사를 편다. 최근에는 폭주 오토바이의 번호판을 촬영한 뒤 나중에 압수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
▷전직 폭주족인 직장인 문모 씨(28)는 “할리데이비슨을 몰다보니 예전처럼 ‘나 좀 보소’ 하며 목숨 걸고 달릴 이유가 없다. 안전장구 갖추고 줄맞춰 다녀야 더 폼 난다”고 했다. 초기 폭주족들은 고급 오토바이를 모는 ‘자존형’이 많았지만 요즘은 배달용 ‘CT100’이나 스쿠터를 타는 ‘생계형’이 대다수다. 음식점 배달원이나 어렵게 스쿠터를 장만한 청소년들에게 오토바이를 경찰에 뺏기는 건 상당한 위협이다. 국경일 폭주가 최근 주춤해진 건 그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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