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나이즈 미국 국무부 부(副)장관(51)과 서울 용산구 미대사관 공보실에서 지난달 29일 단독 인터뷰를 했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나이즈 부장관은 1박 2일 동안 외교통상부 기획재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15일 발효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준비상황과 이란 제재에 따른 이란산(産) 원유 감축, 중국에 억류 중인 탈북자 강제북송(北送) 문제 등을 논의했다.
나이즈 부장관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분신으로 불린다. 국무부의 예산집행과 관리는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담당하는 대외교섭대표 역할을 수행하면서 클린턴 장관의 외교철학을 구현하는 최측근이다. 의회보좌관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비서실장을 지낸 뒤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금융회사인 모건스탠리 최고운영책임자(COO), 패니메이 선임부사장을 역임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2006년 협상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15일 한미 FTA가 양국에서 동시에 발효된다.
“한미 FTA는 양국 모두에 큰 혜택을 줄 ‘윈윈 협정’이다. 17년 전에 미국이 맺었던 FTA 중 사상 최대규모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직접 관여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훨씬 영향력이 큰 협정이 한미 FTA다. 거의 모든 경제 전문가가 FTA 발효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향후 10년간 6∼7%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FTA 말고 그렇게 큰 잠재성장을 이뤄낼 호재(好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경제성장은 당연히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국이다. 최대시장인 미국과의 무역이 증대되는 것이 한국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 확실하다. 더 많은 한국산 제품이 미국에 팔리고 양질의 한국 제품을 미국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에서 집권하면 한미 FTA를 폐기 또는 재재협상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구에게나 반대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한국사람 대다수가 한미 FTA에 찬성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주목한다. 미국처럼 큰 시장에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수출할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한국의 일반 국민에게 큰 혜택을 줄 것이다. 장기적인 혜택을 생각한다면 한국인들이 매우 기뻐할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도 오랜 기간 이 문제를 논의한 것이 사실이다. 여야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고 하면서 많은 토론과 논의가 있었던 문제다. 그 오랜 협상이 끝난 뒤 이 협정이 양국을 위해 비교적 좋은 협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 아닌가.”
―2010년 자동차 부문 재협상 과정에서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는 견해도 있다.
“어제 한국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대표자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자동차업계와도 협의를 했다. 양쪽 다 매우 협조적이다. 양국 모두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경기장에 적용되는 규칙이 공평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FTA가 그 같은 자유무역의 규칙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NAFTA와 비교하면 어떤가.
“미키 캔터 USTR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한미 FTA와 비교해 볼 때 그 당시 상황은 지금보다 논란거리가 훨씬 더 많았다. 17년 전 NAFTA는 미국에서 정말로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그때처럼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미 FTA는 체결 당시부터 그 필요성에 대해 이견이 많지 않았다. 물론 최종 협상 타결까지 가는 과정에서 미조정(微調整)이 있었고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협상이 치열하게 벌어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올바른 협정이고 그 타이밍도 아주 적절하다는 합의(컨센서스)가 있었다. 나중에 보면 두 국가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확신한다.”
나이즈 부장관은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한국 지인(知人)들과의 면담에서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즈 부장관은 민주통합당이 집권 시 한미 FTA 폐기 가능성을 내비친 것에 대해 “그 반대의 진의(眞意)가 무엇이냐. 실제로 야당이 집권할 경우 협상 파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점을 물었고 “외교안보 이슈가 정치화하는 것은 문제”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진보냐 보수냐를 가리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내가 국민에 의해 선택됐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치권을 향한 충고처럼 들렸다.
나이즈 부장관의 담당 분야는 아니지만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를 빠뜨리고 갈 수는 없었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워싱턴의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비정부기구(NGO)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른바 중국 정부와 물밑에서 비밀협상을 벌여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조용한 외교’ 기조를 탈피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북자 북송을 중단하라는 직접적인 요구를 했다.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등장했다.
“한국이 탈북자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대사가 중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와 만나 탈북자 송환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뜻에 반해 북송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중국 정부에 대해 국제규범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은 의회 산하 중국위원회에서 5일(현지 시간)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청문회를 연다. 중국 내 인권 문제와 법치제도의 발전 과정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이 위원회는 9명의 상원의원과 9명의 하원의원, 그리고 대통령이 지명한 5명의 행정부 고위당국자가 참가하는 초정부적 기구. 나이즈 부장관은 “우리는 중국에 대해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인 만큼 이 협약에 따라 보호받는 탈북자들을 추방하지 말고 UNHRC와 협력해 이 문제를 원만히 풀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UNHRC와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고 이 지역 국가들과 힘을 합쳐 탈북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이즈 부장관과 인터뷰를 한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가졌던 3차 북-미 회담(지난달 23, 24일)에서 북한의 비핵화조치와 관련한 진전이 있었다는 발표가 워싱턴과 평양에서 동시에 있었다. 북-미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의지를 증명하기 위해 장거리미사일, 핵실험 및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비롯한 핵 활동을 유예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모니터링을 허용할 것이며, 미국은 북한 주민을 위해 24만 t의 영양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이즈 부장관은 “며칠 전에 워싱턴을 떠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뉴스가 사실이라면 그 같은 진전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6자회담의 재개는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6자회담은 비록 현재 중단된 상태이지만 지속적인 대화의 창구다. 6자회담의 재개와 관련해 유관국과 지속적인 협의를 해 나갈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과 가장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며 북-미 대화의 진전 상황을 한국에 계속 설명할 것이다. 한국과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사안을 진전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와도 협력할 것인가.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해 이야기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다. (9·19 공동성명에서 적시한)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란 제재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협의가 잘돼 가고 있는가.
“핵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는 이란을 제재하는 데 대한 한국의 지지가 견고하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근본적으로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추가적인 도발에 나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한국 정부가 공감하고 있다. 구체적인 원유 수입 감축의 수준은 시간을 두고 협력하고 논의해 가면 되는 일이다. 한국의 협조는 이란 제재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다.”
―핵안보정상회의가 26, 27일 서울에서 열린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가장 중점적인 어젠다는 무엇인가.
“핵무기 개발을 막고 핵물질이 핵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국가 간에 어떤 협력을 이뤄내야 하는지를 결정할 소중한 기회다. 전 세계 50개국 이상의 국가원수가 참여하는 초대형 국제행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같은 재앙을 막을 수 있는 핵안전의 문제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안보와 안전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안이다.”
나이즈 부장관은 한미 FTA가 외교를 통한 일자리 창출 그 자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경세치국(經世治國)에서 가장 성공적인 역할모델 중 하나”라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고 성공의 노하우를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며 가장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과거 동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 고위 인사들의 루트는 대개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는 형식이었다. 체류 시간도 한국보다는 일본 쪽이 길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것이 일종의 ‘매뉴얼’처럼 됐다. 나이즈 부장관 역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일정을 택했다.
나이즈 부장관은 “한미동맹은 영속불멸의(everlasting) 관계이며 사상 최상의 수준”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부상하는 중국과 관련해서는 “한국, 일본과 맺고 있는 동맹관계만큼 중국은 미국에 매우 중요한 양자관계의 협력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1일 일본에서 열린 아태지역 미국대사 만찬 자리에서 나이즈 부장관은 “군사나 외교관계를 뛰어넘어 경제적인 관계 강화가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혹독한 겨울추위를 각오하고 왔는데 봄기운이 완연한 서울 날씨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면서 한미관계의 장래를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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