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인기몰이 중이다.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에 눈물 흘리는 아내, 그런 아내에게 말실수했다가 혼났다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꼬리를 잇는다. 여성들이 그토록 ‘해품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방송분을 틈틈이 보다가 키워드 하나를 발견했다. 주인공들의 대사 중에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켜준다’는 것. 왕과 양명군은 여주인공 연우를 ‘지켜주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며 연거푸 다짐을 하고, 그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지켜주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린다. 연우 역시 왕이 잠든 사이 곁을 지켜주는가 하면 양명군을 위해 거짓말까지 해가며 위신을 지켜준다.
그들은 운명에 의해, 혹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자신의 안위 또는 명분을 위한다면 사랑을 버려야 하며, 사랑을 선택한다면 지위와 명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들이다. 선택은 본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킴’을 의미한다. 드라마에서도 ‘얻고자 하면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반복된다.
세 주인공의 선택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수많은 상처를 입어 만신창이가 되어 가면서도 연인을 지켜주는 셈이다. 여성들을 감동 도가니로 끌어들인 힘이 이 대목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청자들은 세 주인공의 사랑을 보며 자신들 역시 두려움으로부터 누군가가 지켜줄 거란 위안을 받는다. 그 두려움이란 궁중암투로 상징되는 투쟁적 현실일 수도 있고 대왕대비나 철없는 공주 같은 시(媤)자 붙은 주변인일 수도 있으며 영의정류의 나쁜 직장 상사일 수도 있다. 불투명한 미래 역시 두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나마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두려움을 잠시 잊은 채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팍팍한 현실과 달리 그런 드라마의 결말은 항상 해피엔딩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드라마 ‘해품달’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현실을 우화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가 한국이다. 드라마 속 꽃미남이나 현실의 일반인 남자나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임금도 지켜내지 못해 쩔쩔매는 사랑을, 현실의 힘도 없고 한낱 월급쟁이에 불과한 남자들은 과연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인생이라는 드라마에는 대본도 없는데. ‘해품달’을 재미있게 본 남자들 처지에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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