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탈북자가 차려준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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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잡곡 한 톨 안 섞인 희디흰 쌀밥이라니. 쉰 줄의 여성 탈북자 A 씨가 차려준 밥은 그랬다. 현미니 뭐니 섞어 먹는 데 익숙해서인지 도정을 많이 한 듯한 흰밥이 낯설었다. 옆에는 얼큰하게 끓인 쇠고깃국, 이런저런 나물, 그리고 양념이 별로 안 된 짠 꽁치 몇 토막.

그들과 식사를 함께한 건 며칠 전 중국의 낡은 주택에서다. 북에서 건너온 예닐곱 명이 단속을 피해 머물고 있는 곳이다. 한 사회단체가 돌봐주고 있었다.

A 씨는 “별로 차린 게 없습네다”라고 했다. 하지만 남조선 손님 왔다고 준비를 많이 한 게 틀림없었다. 이들이 한 달 반찬값에 쓰는 돈은 700위안(약 12만 원) 정도. 그날 상에 오른 ‘이밥에 고깃국’에는 몇 끼 치의 부식비가 들었을 게다.

길게는 1년째 이곳에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새 종교도 접했고, 민주주의도 알게 됐다. “여기 있으면 고저 밖에 못 나가 답답하긴 해도 먹는 건 해결이 되지. 기도도 하고 책도 보고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소.” 올해 예순이 넘었다는 B 씨였다.

손자를 볼 나이인 그도 배가 고파 북에서 나왔단다. “1994년 김일성 수령 서거하고 ‘고난의 행군’ 시작할 때만 해도 ‘한 1년 고생하면 되겠지’ 했거든. 그때 먹을 게 죽밖에 없었는데 밖에 싸갈 수가 없잖아. 어떡해, 굶으면서 일했지.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똑같아. 바뀌는 게 없잖아.”

큰 기업소(회사)에서 일했다는 40대 C 씨가 나섰다. “사회가 불안하니까 밖에서 일해야 할 젊은 애들이 공장 지킨다며 규찰대니 뭐니 한단 말이죠. 안전부나 보위부에서 그 사람들한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기업소에서 노동자들에게 걷어 주는 거예요. 우리 노동자들이 공장 나가서 돈을 벌어 와야 하는데 집에서 마누라들이 다른 일로 번 돈을 되레 공장에 갖다 바쳐야 됐던 거지요. 이래저래 뜯기니 뭘 먹고 살아요.” 그는 “공장만 제대로 돌아가고, 위에 바치는 돈 없이 밥만 먹게 해주면 탈북이니 뭐니 하는 것도 없을 텐데…”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의 정의에 따르면 이들은 ‘경제적 이유로 인한 불법 월경자’다. 정치적 난민이 아니어서 잡히면 북송된다. 하지만 이들을 국경으로 내몬 건 체제가 유발한 ‘국가적 기아’였다. 중국도 기아에 대한 참혹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것도 지도자의 잘못으로 초래된 굶주림 이었다.

‘1958년 중국 공산당은 좌경적 착오를 시정하기 시작했으나 근본적인 지도 사상은 시정하지 못했다. 1960년 자연재해와 더불어…(중략)…중국 경제는 심각한 곤란에 봉착하게 됐다.’ 이번 양회에 앞서 중국 정부가 내외신 기자들에게 제공한 ‘중국역사 18강’의 한 대목이다. 폭압적인 대약진운동으로 2000만 명 넘게 아사(餓死)한 사건을 완곡하게 서술했다.

그때 굶어죽지 않으려 목숨을 걸고 철책을 넘은 중국인이 있다면 그들은 난민일까, 그저 불법 월경자일까. 그들이 지금 세대의 부모나 친지라면 중국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현재의 중국 지도부는 대약진운동의 참상을 직접 목도했던 세대가 아닌가.

중국한테 북한은 이웃국가 이상이다. 북한 체제에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눈 감고 귀 막은 채 탈북 난민을 무작정 돌려보내는 처사 또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인도주의적 호소를 했더니 경제제재를 들먹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최근 탈북자 단속이 매우 심해졌다는 소식이다. 이밥에 고깃국을 차려줬던 그분들, 다시 뵈면 기자가 밥 한 상 대접하고 싶은데 그게 될지 모르겠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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