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대에 종교인이 많다. 평일에는 50명 정도가 시위를 벌이는데 그중 20여 명이 종교인이다. 7일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이 시작된 후 경찰에 연행된 68명 중 종교인이 12명이다. 11일에는 신부와 목사 등 성직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지난 3년간 해군기지 반대 시위에서 성직자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문정현 신부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작년 7월 강정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그 전까지는 미 공군기지 소음 피해를 감시한다며 전북 군산에 살았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에도 앞장섰다. 강정마을 시위대 속엔 개신교 기독교장로회 측 목사들과 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 스님들도 있지만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주교회의 의장이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해군기지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주교는 2008년 주교회의 의장에 취임한 후 4대강 사업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을 천주교 사회교리로 내세웠다. 천주교는 주교 중심체제로 최종 집행권은 각 교구의 주교가 갖고 있고, 주교회의 결정을 모든 교구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강 주교와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다. 이 주교가 교구장인 수원교구는 지난달 해군을 ‘해적’으로 표현한 만화를 성당에 배포했다. 3일 이 만화를 본 중학생이 성당 신부에게 이의를 제기했다가 폭행을 당했다며 부모가 신부를 고소하는 사건도 생겼다.
종교적 신념은 세속적 신념과는 달리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와 종교를 되도록 분리하려는 이유다. 해군기지 건설은 안보와 환경 보호 가치의 이익 교량(較量)과 같은 세속적 관점에서 따져야 할 사안이다.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 건드리는 것도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든가 “무기를 들고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현실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없다.
물론 종교가 타협할 수 없는 분야도 있다. 인권이 그렇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종교인들은 인권 보호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오늘날 종교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아니라 중국에서 사지(死地)로 송환되고 있는 탈북자의 인권일 터다. 강정마을에서 시위를 벌이는 종교인들은 탈북자 문제엔 눈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