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핵안보회의 D-7
“핵 프로그램 중단한 北정권, 어떤 변화 보일지 몇 년간 주시할 것”
“뉴질랜드는 원자력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청정국가입니다. 대부분의 전력을 수력발전에서 얻고 있습니다. 지열과 풍력 자원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핵안보회의냐고요? 그만큼 핵 확산 위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7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 국회의사당 건물 비하이브에 있는 총리실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한 존 키 뉴질랜드 총리(51)는 ‘역사상 가장 잘생긴 뉴질랜드 총리’ ‘늘 웃고 있는 총리’란 별명처럼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26, 27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하는 그는 이번이 두 번째 방한. 그는 “2010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놀랍게 발전한 모습에 감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10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도 참석했었다. 키 총리는 “뉴질랜드는 일관되게 반핵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 원칙에 따라 정상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다”며 이번 회담에 대해서도 “비록 작은 나라지만 핵 확산 방지에 대해선 강하고 의식 있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 확산 방지에 대한 신념 확고해”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원자력 에너지 사용에 늘 민감하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때는 일본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성물질이 뉴질랜드까지도 날아올 수 있느냐를 놓고 언론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핵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은 뉴질랜드 정부와 언론이 항상 주시하는 국가 중 하나다. 키 총리는 지난달 23일과 24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북한과 미국의 제3차 고위급 회담을 언급하면서 “중국을 향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게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에 대해 묻자 “지켜보겠다”고 했다. 이어 단호한 말투로 “북한의 새 정권이 향후 몇 년간 어떤 변화를 보일지 진전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한 그는 “북한의 상황은 ‘분명한 위협’이며 (폭력 없이) 외교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북한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멀 수 있으리라는 기자의 선입견을 깨고 관련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는 키 총리의 단호함은 신념을 중시하는 뉴질랜드인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440만 명이지만 자신들이 세운 원칙에 어긋나면 국제사회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발언해 국제 여론을 이끄는 강소국이다. 뉴질랜드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태 때도 즉각 “한반도와 지역 안보에 대한 심각하고 고의적인 도전”이라고 규탄 성명을 내놓은 바 있다.
○“긴축재정과 미래성장산업으로 위기 타개”
현재 뉴질랜드의 경제 상황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가 부채는 2011년 기준으로 2500억 달러(약 281조7500억 원)에 이른다. 키 총리는 지난해 1월 국정연설에서 공기업을 매각해 국가 채무상환을 빨리 마무리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발표로 야당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아 정치적 곤경에 빠질 수도 있었으나 같은 해 11월 열린 총선에선 48.1%의 지지율을 기록해 재선에 성공했다. 비록 소수 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이룬 집권이긴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가장 높은 지지율로 당선한 인물이다. 키 총리에게 재선된 비결을 묻자 “뉴질랜드에선 국민들이 대개 두 번의 기회를 준다”며 농담 섞인 웃음을 터뜨린 뒤 “(경제 회복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 때문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키 총리는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긴축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복지수당을 점검하고 정부 제도를 개혁해 규모와 예산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4∼2015년엔 정부 예산을 흑자로 돌릴 계획입니다.”
지출을 줄여 허리띠를 졸라맨 다음 그가 취할 단계는 미래성장동력을 키우는 것일 터. 뉴질랜드의 미래성장동력으로 그는 식품 산업과 서비스 산업을 들었다.
“농장 생산 식품을 빼놓고 뉴질랜드 지배 산업을 말할 수 없다. 소와 양 같은 목축업과 함께 키위 와인 화훼 등 1차 식품과 2차 가공 식품을 통틀어 생산하고 있다.”
그는 이제 사람들이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친환경인지,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 등을 따져 음식을 선택하는 만큼 “경쟁력 있는 식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변호사 회계사 건축가 등 국제 컨설팅 서비스 부문도 특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선 생소하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에 많은 인재가 진출해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뉴질랜드는 영화 제작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반지의 제왕’과 ‘아바타’가 뉴질랜드에서 촬영됐고 한국 영화 ‘실미도’ ‘번지점프를 하다’ ‘남극일기’ 등이 뉴질랜드에서 촬영 혹은 편집 작업을 했다.
키 총리는 “(아바타 후속편이) 뉴질랜드에서 제작되길 바란다”며 “최근 뉴질랜드로 많은 영화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제임스 캐머런 감독(아바타), 피터 잭슨 감독(반지의 제왕)뿐 아니라 영화 후반 작업에 필요한 애니메이터, 특수효과 기술자 등이 웰링턴에 모이고 있다”며 “우리 영화 산업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순 없지만 호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키 총리는 2001년 국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뱅커스 트러스트, 메릴린치 등에서 외환 업무를 담당한 경제 전문가다. 외환 딜러로 활동할 때엔 뛰어난 위기관리 대처 능력과 대담한 면모로 동료들로부터 ‘웃는 자객(The smiling assassin·웃는 표정으로 칼을 휘두른다는 뜻)’이라고도 불렸다. 뉴질랜드 안에서는 자수성가형 자산가로도 불린다. 6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그의 현재 재산은 미화 5000만 달러(약 564억 원)를 넘어 역대 총리 중 가장 부자란 소리를 듣는다.
○“FTA로 한국과의 관계 더 가까워지길”
지난달 22일은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1주기였다. 185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으로 한국인 유학생 두 명도 희생됐다. 키 총리는 당시 상황을 묻자 인터뷰 도중 유일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한국인 남매 두 명이 CTV 건물이 붕괴하면서 숨진 걸로 알고 있다. 정말 슬픈 일이다. 또 당시 보여준 한국의 성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잠시 후 “지진은 대재난이다. 아직도 엄청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진 여파로 주택 7000채 이상과 도심 상업지역의 건물 절반 이상이 철거될 예정이며 보험 신청만 현재 40만 건에 달한다. 뉴질랜드 정부가 예상하는 재건 기간은 10년이며 총 비용만 200억 달러(약 22조5400억 원) 이상이다.
키 총리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뉴질랜드는 6·25전쟁 때 연인원 6000여 명의 전투병을 파병했다. 뉴질랜드 총 병력 수가 지금이나 그때나 1만 명 정도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당시 45명의 군인이 희생됐다. 전쟁 이후엔 원조 프로그램 ‘콜롬보 플랜’(개도국의 지식인이나 공무원을 초청해 선진 기술을 제공하는 연수 프로그램의 일종)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올해는 뉴질랜드와 한국이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역사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갖고 있는 양국의 관계를 기념하고 축하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밀접한 관계를 FTA를 통해 진전시키고 싶다.”
2008년부터 논의가 진행된 한-뉴질랜드 FTA는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다. 키 총리는 ‘호주-중국 FTA’를 예로 들며 “FTA는 양국 모두 교역량이 증가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과는 여러모로 보완 관계에 있다”며 한국 제품의 경쟁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산 전자제품 이름을 줄줄 꿸 정도로 한국 예찬론자였다.
“뉴질랜드는 이미 삼성이나 현대의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을 낮은 관세로 수입하고 있다. 우리 집에 TV가 여러 대 있는데, 다 삼성 제품이다. 우리 아들이 아주 좋아한다(웃음).”
이어 그는 “뉴질랜드의 농산품은 생산이나 수출 시기가 한국과 겹치지 않아 한국 농업에 타격을 주지 않고 오히려 한국 내에서 미국·호주·유럽산 수입품목과 가격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신선하고 맛있는 키위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FTA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혹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기자는 그러면서 2009년 미국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했을 때 그가 말했던 ‘뉴질랜드에 방문해야 하는 10가지 이유’와 같은 재치 있는 답변을 주문했다. 당시 그는 ‘방문한 지 30일 이내 재방문할 경우 총리가 직접 마중 나가는 서비스’ ‘영국이나 린지 로언(음주운전으로 체포됐던 미국 여배우)처럼 왼쪽 도로로 달리는 드라이브의 즐거움’과 같은 재밌는 말을 던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때(2009년)만 해도 젊었죠(웃음)”라고 한 뒤 망설이지 않고 “골프! 골프 치러 오세요!”라고 활기차게 말했다. 이어 총리의 입에서 뉴질랜드에서 활동하거나 활동했던 한국계(혹은 한국국적) 골퍼들의 이름이 줄줄 나왔다. “지금 미국프로골프(PGA)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니 리(22), 세계 최연소 여자 프로대회 우승자인 리디아 고(14), 주니어 뉴질랜드 국가대표 출신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선수 안신애(22·한국국적) 등 뉴질랜드 최고의 골퍼는 대부분 한국계이다. 지난해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땐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키 총리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정말 좋다”며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 이민자들이 뉴질랜드 발전의 한 축이 되고 있으며 유학생이나 관광객도 언제나 환영”이라고 했다. 이번 방한 때는 “지난번 방한 때처럼 비무장지대를 가볼 순 없을 것 같다”며 “핵 확산 방지 논의 이외에 양국에 득이 될 수 있는 경제 관련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웰링턴=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존 키 뉴질랜드 총리 약력 ::
△1961년 오클랜드 출생 △1978년 크라이스트처치 번사이드 고등학교 졸업 △1981년 캔터베리대에서 회계학 학사 △1984년 결혼 △1985∼1988년 웰링턴 금융회사 엘더스 파이낸스에서 외환 딜러로 근무 △1988∼1995년 오클랜드 투자은행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외환 부장으로 근무 △1995∼2001년 메릴린치로 이직, 싱가포르와 런던, 호주 등지에서 국제 외환 업무 담당 △1999∼2001년 미국 뉴욕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외환거래위원회 회원 △2001년 귀국, 야당이던 국민당 입당 △2002년 총선에서 오클랜드 내 헬렌스빌 지역구 출마, 당선 △2004년 국민당 재정 대변인으로 임명 △2006년 국민당 당수로 임명 △2008년 총선에서 제1당, 뉴질랜드 38대 총리로 공식 취임(노동당과 9년 만의 정권 교체) △2011년 총선에서 재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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