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읽기]<37>‘사계절을 나기 위한 집’ 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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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북 상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령 밑에 큰 도회지로 산세가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은 조령과 가까워서 충청도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동래와 통한다.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가 편리한 까닭이다.”

그래서 상주는 예부터 번성한 도시였다. 물류의 집합지였고 정보의 교환처였다. 그러나 살기에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니다. 여름은 덥고 비도 많이 오고, 낙동강의 범람도 있다. 반면에 겨울은 눈도 많고 심하게 춥다.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것이 꼭 살기에 좋은 법은 아니다. 그래서 상주와 안동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전혀 다른 건축을 보여준다. 상주지역의 건축적 특색은 겨울을 견디기 위한 북방식 평면과 여름을 나기 위한 남방식 구조가 섞여 있다.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이 그 대표적인 집이다. 양진당은 검간 조정(黔澗 趙靖·1555∼1636)이 1626년 처가인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해체해 낙동강에 뗏목을 띄워 상주 승곡리에 옮겨 지은 집이다. 남녀 차별 없이 상속이 똑같이 나누어지던 시대에 하필 집을 뜯어 왔다는 게 좀 의아하지만 어쨌든 조정은 처가의 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러나 그 집이 상주에 안착할 때는 상주의 자연조건에 따라 많은 변형이 이뤄졌다. 양진당의 안채는 방들이 ‘田’자 형태의 겹집이다. 겹집이란 방-마루-방으로 이어지는 홑집과 달리 ‘밭전’ 자의 네모 칸이 모두 방으로 이어져 있는 집을 말한다. 이는 한겨울의 추위에 견디기 위한 형태로 주로 강원도 이북의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런데 입면구조를 보면 조선집에서는 드물게 양진당은 기단이 사람 키 이상으로 올라와 있다. 이는 분명 더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한 남방식 주거의 형태다. 더구나 안채 좌측의 날개채는 이층으로 일층은 부엌과 헛간이 있고 이층에는 방과 긴 마루가 있다.

상주지역은 한겨울의 추위도 추위지만 한여름의 더위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태양열로 뜨거워진 땅의 열기를 피해 입면구조가 고상식 주거로 정착된 것이다. 그 결과 양진당을 비롯한 상주의 고상식 겹집형 주거들은 한여름의 더위와 낙동강의 범람, 한겨울의 추위와 눈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건축가
#양진당#옛집읽기#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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