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경욱]제주 해군기지 크지도 않은데… 현장 점거한 시위대 보니 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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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16일 찾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는 긴장 속에 발파작업이 재개됐다. 현장 입구는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었다. 언뜻 2003년 여름 이라크 파병 범정부조사단의 일원으로 출국했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공항 로비에까지 나와 파병 반대를 부르짖던 시위대를 다시 보는 듯했다. 그들은 우리가 나라를 팔아먹으러 가는 양 적대시했다. 1년여 치열한 논쟁 끝에 자이툰부대는 파병됐고, 모범적 활동으로 한국군은 유엔이 선호하는 평화 지킴이가 돼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또다시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과 대치 속에서 시간과 예산을 소모하고 있는가.

제주기지 규모는 예상과 달리 작았다. 1999년 필자가 본 일본 요코스카 항과 비교해도 17분의 1이 채 안 되는 넓이였다. 논란의 현장에 서니 아쉬움부터 차올랐다. 지구촌 곳곳을 오가며 자원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자원빈국 한국의 혈류를 지키고 중국과 일본 간 해양권익 전장에서 무역대국 한국의 이익을 지켜낼 국토의 최남단 기지가 이토록 자그마한 게 안타까웠다. 게다가 극지 해빙으로 머잖아 수많은 상선이 지나다닐 북극 항로의 입구로서 과연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로 어지러운 현장을 살펴보면서 페르시아 만에서 한반도 인근 해역에 이르기까지 해외 심해기지를 속속 열고 있는 중국이 떠올랐다. 중국은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에서 시작해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항, 미얀마의 시트웨 항에 이르기까지 건설 과정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자원 부존지역을 자국의 하이난기지에 한 줄로 묶는 해양기지 벨트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략적 벨트는 여기서 끊어지지 않는다. 중국이 50년 사용권을 얻은 나진항의 제3, 제4 터미널을 현대식으로 건설하기로 북한과 합의함으로써 그들의 해양권익 라인은 한반도 동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그림에서 중국 류츠구이(劉賜貴) 국가해양국장의 이어도 망언이 담고 있는 전략적 배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코앞에서 새로운 주요 2개국(G2) 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국이 신국방전략 지침을 통해 아태지역으로의 방향 선회를 공식화한 지금,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가 생존과 번영에 대한 상황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 군 역시 1세기 후의 국가 생존까지 담보할 태세를 갖추려면 지금부터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50만 m²(약 15만 평) 남짓한 제주 해군기지의 건설에 만족할 것인가.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필자의 심정은 착잡했다. 섬의 골프장 절반 이상이 도산할 정도로 위축된 제주도의 경기를 생각하더라도 할 일이 태산 같았다. 머지않아 8만 t이 넘는 크루즈선이 관광객 수백, 수천 명을 쏟아낼 것이다. 그들이 제주 미항을 다시 찾도록 하려면 빼어난 자연풍광과 세월이 밴 마을과 길까지 연계하는 슬기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지 현장에서 공항에 이르는 동안 어수선한 시가지를 보면서 그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뿐이었다.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기고#심경욱#제주#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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