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4·11 서울 관악을 총선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여론조사 경선 조작에 대한 비난 여론과 야권 연대의 불씨를 살리자는 압박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갈등은 후보등록 마지막 날 봉합됐지만 야권연대의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통합진보당도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번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를 진행한 한 업체의 간부가 옛 민주노동당 고위당직자 출신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문제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시간에 민주당 참관인은 없었고 진보당 참관인이 참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참관 과정에서 ARS 조사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시험감독이 시험지를 빼돌렸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도 통합진보당이 “민주당의 경선 불복이 더 문제”라고 강변한 것은 폐쇄적 진영 논리의 극치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이 대표가 사퇴한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를 통합진보당 몫으로 남겨두었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한 김희철 의원에 대해선 민주당 후보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여론조사 조작 시비에 휩싸인 경기 안산 단원갑에서 민주당 백혜련 후보의 공천도 취소했다. 반민주적 불법행위인 여론조사 경선 조작 행위의 진상을 가리기보다는 통합진보당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이 대표의 사퇴를 끝까지 막은 배후는 옛 민노당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져 있다. 진보신당 탈당파와 국민참여당까지 합친 통합진보당의 소(小)통합을 주도한 이들은 주체사상파 계열이다. 당내 비주류인 인천연합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를 불려왔다. 옛 민노당 출신인 진중권 씨는 이 대표 대신 출마한 이상규 씨가 경기동부연합의 ‘몸통’이라고 말한다. 진 씨는 “자기들이 하는 짓이 나쁜 짓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어 보인다”고 일침을 놓았다.
경기동부연합은 벼랑 끝 전술로 민주당을 압박하며 야권 단일화를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최대 접전지 수도권 지역에서 불과 몇천 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선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통합진보당에 무릎을 꿇었다. 소수인 주사파 세력의 협박에 제1야당이 휘둘리는 형국이다.
통합진보당을 만든 종북좌파 세력은 2단계 정권교체론을 거론한다. 현실적으로 세력이 미미한 1단계에선 민주당과 손잡고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집권 후 야권 공동정부를 운영하면서 좌파적 분위기를 확산해 2017년 대선에서 통합진보당 단독으로 집권하는 것이 2단계 정권교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 당분간 기생할 숙주(宿主)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있다. 통합진보당의 전략은 민주당에 기생하다 나중에 숙주를 먹어치우려는 것이다. 한 대표 등 지도부가 이것을 알고 협조하는 것인지, 모르고 끌려가는 것인지 의문이다.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이 주도하는 야권연대의 들러리를 서면서, 당내 일각에서 중도성향 유권자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