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김용(金墉) 다트머스대 총장이 2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나란히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미국이 사실상 결정권을 쥔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김 총장을 지명한 것이다. 그는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존 케리 상원의원, 공개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쳤다.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한국계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하는 것에 우리 국민은 큰 자부심을 느낀다.
유엔이 세계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라면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세계 경제를 움직인다. 유엔 사무총장에는 어느 한 강대국 출신을 고를 수 없으니 주로 약소국 출신이 임명됐다. 반면에 세계은행과 IMF 총재직은 70년에 가까운 역사에서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김 총장의 지명은 한국계를 넘어 아시아인의 쾌거로 평가받을 만하다.
김 총장은 서울에서 출생해 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계 부인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고 부부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사실상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그가 세계은행 총재에 오르는 것은 당(唐)나라 시절 서역까지 진출한 고선지 장군이나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대사가 이뤘던 성취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김 총장은 부단한 도전정신과 노력으로 한국사의 주인공에 머물지 않고 세계사의 당당한 주역이 될 기회를 잡았다.
한국은 광복 이후 북한과 달리 개방의 길을 걸었다. 3대 세습의 북한이 현대사의 오지(奧地) 국가로 전락한 반면에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지닌 국가로 도약했다. 김 총장은 질병 퇴치 등에 오래 종사한 의료 전문가다. 세계은행의 주요 업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김 총장을 지명하면서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개도국 전문가가 세계은행을 이끌어야 할 때”라고 말한 것은 개도국 한국의 유례없는 성공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세계의 국경이 속속 사라지는 시대에 김 총장의 지명을 보며 아직도 우리에게 개방을 두려워하는 폐쇄성은 없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과 당당하게 대화하고 외국으로 나가 세계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지금보다 더 많아야 한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 속에서 한국에 자유세계의 광대한 시장이 주어진 것은 천운이었다. 국민은 피땀과 눈물로 자유 개방 정부를 지켜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을 열면 망한다고 말하는, 구한말 쇄국파 같은 겁쟁이 정치세력이 있다. 국민의 바른 선택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