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의원은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때로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이 기소청탁 사건과 관련해 남편 김재호 판사와 자신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린 뒤에도 나 전 의원은 억울한 게 많은 듯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도 “김 판사가 박은정 검사와 사건과 관련한 통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은 어차피 기소될 사안이었기 때문에 기소를 청탁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의 말대로 한 누리꾼이 “나경원은 이완용 땅을 찾아준 판사”라고 올린 글은 명백히 허위였고, 경찰도 그 누리꾼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마치 불기소 처리됐어야 할 사람이 남편의 외압으로 부당하게 기소된 것처럼 여기는 세간의 시선이 야속하다는 그의 한탄은 수긍할 만하다.
김 판사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아내가 인터넷에 떠도는 허위사실 때문에 정신적 정치적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남편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이는 판사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김 판사처럼 했을 것”이라고 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부산지법 판사 시절 남편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번역 출간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되자 남편 구속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구명운동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김 판사의 부부애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김 판사가 일반인이었다면 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 가족이 피해를 본 사건이니 빨리 처리해 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 나 전 의원도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많지 않은 듯했다. 더구나 김 판사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생각해보니 박 검사에게 전화를 한 것도 같다”고 했다. 검사에게 아내가 연관된 사건에 대해 전화한 게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할 게 없는 일로 여기는 것은 스스로 특권의식에 젖어 있었음을 고백하는 진술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 대목에서 국민은 “판검사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며 분노한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서민들에게 김 판사의 ‘사소한’ 전화 한 통은 반칙과 특권의 상징일 수 있다. 게다가 일반 국민은 벌벌 떠는 경찰의 소환 요구마저 가볍게 여기는 판검사들의 태도는 분노를 더 키웠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기소청탁 의혹은 경찰이 김 판사와 나 전 의원, 시사IN 주진우 기자 등 관련자를 모두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하면서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다. 나 전 의원은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하는 등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김 판사와 박 검사의 ‘어긋난 인연’을 보며 판검사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힘이 셀수록 스스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달라는 보통 사람들의 외침을 제대로 알아들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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