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말을 잘해 소통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이한 단어로 연결된 단문(短文)의 연설은 설득력이 높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던가.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대선이 끝나면 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유럽을 겨냥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방어 전략에 대해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러시아에 양보할 듯한 인상을 줘 공화당이 벼르고 있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마이크가 켜진 것을 모르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뒷담화를 했다. 사르코지가 “그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자 오바마는 “나는 그런 그를 매일 상대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친 것이다.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과 선거유세를 하던 중 “저기 뉴욕타임스의 멍텅구리(asshole) 애덤 클라이머(기자)가 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켜져 있던 마이크를 통해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2010년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자신에게 곤란한 질문을 퍼부은 여성 유권자를 향해 “재앙”이라고 말한 내용이 방송사 마이크로 그대로 전해져 이 여성의 집에 찾아가 사과해야 했다. 말실수로 인기가 치솟은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앞두고 마이크가 작동 중인 것을 모르고 “지금 막 소련을 영원히 불법화하는 법률에 서명한 것을 알리게 돼 기쁩니다. 5분 뒤에 폭격을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말장난을 했다. 공산주의를 경멸하는 유머감각에 사람들은 배꼽을 쥐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로버트 제노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본질이 말”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입이 화근(禍根)이라 하겠다. 한 해 운세에 “올해는 설화(舌禍)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심심찮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마이크도 문제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화면만 터치하면 동영상이 찍힌다. 그렇다고 ‘침묵이 금’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