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한국어 호칭이 참 어렵다고 한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들이 저지르는 흔한 말실수 역시 가족간의 호칭과 얽혀 있다. 주위에서 보면 TV 드라마에 ‘오빠’란 호칭이 넘쳐나다 보니 외국 새댁들도 곧잘 ‘오빠’라고 따라 부르곤 한다. 남편도 ‘오빠’고 비슷한 연배의 남성은 웬만하면 다 ‘오빠’다. 그러고는 시아버지에게 존칭을 한다고 ‘오라버니’라고 부른다. 옆에서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니 ‘오라버니’로 불린 시아버지도 참으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이룬 몽골 여성들을 위해 특강을 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때도 호칭은 단골 질문거리다. 특히 시댁 가족들의 호칭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한다. 대가족제도 아래서 사용되던 호칭이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데, 현재의 감각에 맞지 않는 표현들이 더러 있어 더 어렵다. 시동생을 부를 때도 결혼을 안 했으면 ‘도련님’, 결혼을 했으면 ‘서방님’으로 구분해 불러야 하는데, 서방님은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니 외국인들에게는 그저 알쏭달쏭할 뿐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호칭이지만 또 중요하기도 하다. 호칭은 인간관계 속에서 적절한 언어예절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상대를 부르는 호칭은 의사 전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언어예절이 없는 언어는 없지만, 한국은 예의를 중시하는 전통 속에서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이 특히 발달돼 있다. 한국어로 소통할 때 한국인의 언어예절에 대한 높은 인식과 지식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위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호칭 문제가 때때로 혼란을 넘어 관계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문법이나 발음상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쉽게 용납이 되는 편이지만 언어예절에 어긋나는 발언은 상대방에게 큰 실례가 됨은 물론이고, 때로는 모욕이 되기 때문에 오해나 비난을 받기 쉽다. 언어 공동체 안에서 기대하는 관행과 사회적 규범을 어긴 무례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에게 호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한국어 전공자로서 한국인들의 대화를 관찰하곤 하는데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한국인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나눈 뒤 곧바로 명함을 주고받는다. 대화는 명함을 살핀 뒤에야 시작된다.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를 알고 그 위치에 맞는 호칭어를 쓰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외국인들이 눈여겨볼 특징이다. 예를 들어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을 ‘○○○ 씨’라 부르면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서는 실제 하는 일과 상관없이 상대를 ‘사장님’ ‘사모님’ ‘선생님’이라 부른다. 경어법이 발달해 최상의 존칭인 ‘님’을 붙여서 호칭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말을 건넬 때 식사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사말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해당 언어의 문법과 발음을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 중점적으로 익히려 한다. 반면 호칭은 비교적 간단하게 생각하고 편리한 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호칭을 사용하게 될 경우 예절에 어긋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특히 서로 간의 사회적 위치를 분명히 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과 호칭어가 발달한 언어 습관을 고려할 때 호칭 문제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언어예절의 하나다. 언어예절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언어 현상이다. 한국어 호칭어의 고유한 특징은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돋보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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