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정치공학만 판치고 철학이 없는 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0일 03시 00분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4·11총선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승부를 예상키 어려운 초박빙(超薄氷)의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총선은 역대 선거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면서 정권심판론에 바탕을 둔 회고적 투표가 희석화되고 있다.

원래 총선은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12월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면서 정부 심판만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작년 말 코리아컨설팅넷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선 투표 기준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만을 생각하며 투표할 것이다’라는 응답은 34.3%인 반면,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투표할 것이다’라는 비율은 65.7%로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이번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적 야권연대도 성사되었다. 선거가 구도의 싸움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야권에 유리한 선거 지형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만약 2008년 총선에서 야권연대가 성사됐다면 한나라당이 승리했던 수도권의 17.3%에 해당되는 14곳이 야당 승리로 바뀔 수도 있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112석)에서 현역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선거구는 총 42곳이다. 이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 연대의 힘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다.

‘선거의 여왕’과 ‘야권연대’ 대결

여하튼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유력 대권후보 박근혜의 힘과 야권연대의 위력이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총선 판도가 박빙으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시된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잘못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도 여야 모두 결과에만 집착하면서 선거 과정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표만 된다면 국가이익은 물론이고 원칙과 정체성도 서슴없이 버리는 선거 공학만 있고 선거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두려움만 줄 뿐 정작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직 ‘저 상품이 나쁘니까 내 상품을 사라’는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알리는 포지티브 운동은 사라지고 ‘상대방 헐뜯기’에 혈안이 된 네거티브 운동만이 기승을 부린다. 작금의 선거가 통합보다는 분열을, 관심보다는 냉소를 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철학이란 맹목적 습관에 따른 삶의 대안으로 좋은 삶은 무엇이고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깨닫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선거에서 철학이 살아 숨쉰다는 것은 바로 맹목적 습관에 따라 펼쳤던 나쁜 선거운동의 대안으로 무엇이 좋은 선거 운동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선거를 통해 좋은 정치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줄기차게 쇄신과 변화를 부르짖었던 여야 지도부에서 이런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둘째, 정책 차별성은 없고 정책 물타기만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당에서 제출받은 15개 정책의제에 대한 입장을 비교·분석한 결과, 새누리당은 표만을 의식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 연금 통합에만 명확히 반대 의견을 냈을 뿐 수도권 규제 완화 등 9개 의제에서는 명확한 찬반 의견 없이 기타 의견을 제시했다. 현 정부와의 차별화로 정권심판론을 비켜 가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보이지만 이는 여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대선 염두에 둔 유권자 많아

셋째, 지역 일꾼을 뽑아야 할 총선에서 정작 지역구 후보는 보이지 않고 대선 후보만 부각되고 있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전혀 모른 채 감으로 투표하는 일이 벌어질 위험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위험성은 최근 한국선거학회와 YT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62.9%)꼴로 지역구 후보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최근의 ‘추지(推知·투표 선택의 준거―편집자 주)틀 이론’에 따르면 유권자는 제한된 정보만 갖고도 확신에 차서 투표를 한다. 그런데 유권자가 후보도 모르고, 정당 간의 정책적 차별도 못 느끼는 상황에서 어떻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최선(最善)이 아닌 차악(次惡)을 뽑는 우울한 선거만 있을 뿐이다.

기교와 선동으로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변화의 시작은 철학이다. 여야 지도부는 단지 선거를 위한 선거가 아니라 선거다운 선거를 위해 기존의 음습한 선거공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가 될 수 있음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총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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