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시트콤 같은 복수담임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0일 03시 00분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어느 회사에 평사원이 단 한 명 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긴다. 사장이 이런 사정을 알았는지 직원을 두 명으로 늘려주마 한다.

그의 밑에 새로 배치된 직원은 놀랍게도 그 회사의 부장이다. 사장은 둘이 잘 알아서 업무를 나눠 맡으라 한다. 당신이라면 상사인 부장에게 어떤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업무 분담은커녕 상전을 모셔야 하지 않을까.

시트콤 같은 상황이 실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육 당국이 학교폭력 해법이라며 내놓은 복수담임제 이야기다. 개학한 지 한 달이 지난 요즘, 복수담임제가 적용된 전국의 중학교 2학년 담임 중 상당수는 ‘죽을 맛’이라고 토로한다.

부산의 한 중학교 사정을 살펴보자. 10개 반에 모두 복수담임이 배정됐다. 제2담임 중 절반이 부장교사다. 나머지는 건강이 안 좋아서 올해부터 담임을 맡지 못하게 된 이들이거나 임산부다. 심지어 한 제1담임은 자기가 속한 교과의 부장교사를 2담임으로 받게 됐다. 1담임이 2담임에게 업무를 나눠 하자고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 학교의 한 1담임교사는 “1담임보다 2담임이 모두 고참급이라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입력처럼 비교적 간단한 일조차 도와달라고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학교는 2담임이 심층지도가 필요한 학생의 생활지도를 분담하기로 했다. 5월로 예정된 수학여행 준비를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서 갈등이 불거졌다. 일진처럼 심층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은 학교 밖에 있을 때 더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2담임들은 수학여행 같은 행정업무는 1담임의 업무라며 손을 놓고 있다. 한 1담임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진은 2담임이 관리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일진들이 1담임을 무시하는 부작용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돈 문제로 교사들끼리 감정을 다치는 일까지 생긴다. 담임을 맡으면 월 11만 원의 수당이 나오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2담임이 수당만 챙긴다며 못마땅해하는 1담임들도 있기 때문이다. 2담임을 맡은 한 원로 교사는 “젊은 선생님들이 ‘거저 받는 돈이니까 아이들 간식이나 사시라’는 식으로 말해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는 복수담임이 학교폭력 예방이라는 당초 목적에는 부합하지 못하면서 교사들 간에 감정의 골만 키운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29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교육감 중 일부는 복수담임제 때문에 학교가 파행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당국은 복수담임제가 잘 정착되고 있다며 통계만 늘어놓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94%의 학교가 복수담임제를 실천하고 있고, 이 학교들은 100% 자율적으로 업무 분담 방식을 정했다고 홍보했다.

앞서 사례에서 열거한 상황들도 교과부를 거치면 미화되기 일쑤다. 교과부는 저경력 교사와 고경력 교사를 복수담임으로 지정하면 상호 멘토링을 통해 노하우가 전수된다고 주장한다. 일부 부장교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담임을 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 담임 기피 현상이 없어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학생들이 담임이 두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규칙을 준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교장이 친한 부장교사들을 고려해 그들 위주로 업무 분담 방식을 정해버리고, 교사들 사이에 1담임 기피 현상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늘 “현장 착근”을 부르짖는 교육 공무원들이 숫자 놀음에서 벗어나 진짜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방증이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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