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한국에 ‘또 다른 김용’ 자라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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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교육 열기는 그때그때 유행을 만들어낸다. 박세리와 신지애가 LPGA를 휩쓸 때는 ‘골프 대디’가 아니면 부모 노릇을 못하는 것 같더니 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이 됐을 때는 ‘반기문표 영어교육’이 판을 쳤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서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소녀들이 전국 스케이트장을 채웠다. 이제 한국 부모들의 교육 모델은 세계은행 총재후보로 지명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으로 모아지는 듯하다.

글로벌리더의 조건, 실력 소신 헌신


세계은행은 막대한 자금을 주무르지만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아니다. 세계은행의 설립 목적은 저개발국의 빈곤 퇴치다. 그 방법이 금융지원일 뿐이다. 세계은행 총재에게 금융지식 못지않게 뚜렷한 소명의식과 무한한 인류애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세계은행이 그저 막강한 금융기관 중 하나로 비친 것은 총재직에 금융 전문가나 정치인 출신이 임명돼 실제로 금융인처럼, 정치인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졸릭 현 총재도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김 총장의 후보 지명은 세계은행의 이런 취약점을 예리하게 간파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영리한 인사다.

김 총장의 총재후보 지명은 다양성과 융합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미국이라는 배경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성장 배경부터가 융합적이다. 우리말을 불편하지 않게 구사하고 모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잊지 않았지만 미국인으로서 성장했다. 전공도 크로스오버다. “살아남으려면 기술을 익혀라”라는 치과의사 부친의 조언에 따라 의대에 갔지만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는 어머니의 영향에 따라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1980년대 중반 아이티 방문은 그의 진로를 바꾸었다. 그는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이 있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빈국의 참혹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젊은이는 최빈국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이티와의 인연이 세계은행 총재직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의 삶의 궤적은 오바마 대통령과도 닮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백 혼혈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성장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탄탄대로가 보장됐으나 로펌 대신 시카고에서 자선봉사단체 및 시민 법률상담 활동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성공하려면 실력은 기본이다. 실력이라면 한국 학생들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옳다고 믿는 바를 향해 밀고 나가는 소신과 그것을 이뤄내기 위한 자기희생과 헌신이 더 중요하다. 한국 부모들은 자식들 공부는 열심히 시키면서도 이런 덕목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비리그 출신 자식이 빈국의 말라리아와 결핵, 에이즈 퇴치를 위해 떠나겠다고 할 때 등 두드리며 격려할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한국 부모가 자녀의 봉사 막는다”


김 총장은 성공을 꿈꾸는 한국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충고했지만 그 부모들에겐 너무 공부만 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라는 상반된 주문을 했다. “한국 학생들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 부모들이 한사코 그것을 막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부모들에게 자녀의 봉사활동은 대학입시에 필요한 시간을 채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부와 출세에 지장을 주는 그 이상의 봉사는 부모들이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 대한 아픈 지적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세계은행 총재가 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만일 그가 한국에서 교육받았어도 지금의 위치에 올랐을지 지극히 회의적이다. 자식을 김용처럼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그가 일신의 영달을 버리고 공동체와 인류에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오늘과내일#정성희#김용#세게은행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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