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허태균]중년에게는 새로운 착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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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일전에 부부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한 심리학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년 여성이 상담하러 와서 남편이 갑자기 집을 나갔다고 하소연하면, 그 심리학자는 꼭 조심스럽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한다. “혹시…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습니까?” 만약 그 불쌍한 여성이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면, 심리학자는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곧 돌아올 거라고 말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그 여성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남편은 추호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 심리학자는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한단다. “어쩌면 남편은 안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지로 찾으려 하지 마세요.”

그의 예측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중년 남성이 겪는 위기를 얘기하고 있다.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남자는, (결코 그렇게 될 리는 없지만) 아직도 자신의 젊음을 믿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모험을 감수할 심리적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이다. 그는 분명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새로운 여성에게 버림 받고, 자신이 가족의 소중함을 잠깐 잊었다며 참회하는 눈빛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웬수’를 가족이 용서하고 안 하고는 그 다음의 얘기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심지어 ‘다른 여자’도 없이 가족을 떠난 사람은 가족의 가치를 ‘잊은’ 것이 아니라 ‘잃은’ 것이다. 아니, 세상과 자신의 가치를 잃은 사람이다.

청춘은 꿈으로 가득차 있는 시기

너도 나도 아프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청춘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시기다. 지금의 중년들도 20대였을 때는, 결국 한때의 착각으로 밝혀질지언정 수많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대부분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당연히 취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디에 취직하건 최소한 임원이나 부사장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TV에서 보는 멋진 노인처럼 품격 있게 늙어, 은퇴 후에는 근사한 전원주택에서 뛰어노는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사랑에 빠져 그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았고,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간직하며 살 수 있다고 상상하며 결혼했다. 자신의 자식들은 열심히만 키우면 착하고 똑똑하게 자라 웬만하면 ‘SKY’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 착한 며느리, 유능하고 다정한 남편과 행복하게 살 거라고 예상했다. 이런 꿈을 꾸었기에 30대에는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그 꿈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꿈들을 현실로 즐기면서 사는 중년은 몇 명이나 될까.

40대 초반부터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꿈들은 하나씩 ‘착각’으로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인간의 본질 중 하나인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40대 초반에 거울을 보면 예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자신이 혐오하던 배 나온 아저씨가 서 있다. 한때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아내는 어디 가고, 10여 년이면 참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회사에서는? 임원은커녕 당장 내년이 걱정된다. 자식의 성적표를 볼 때마다 친자식인지 의심스럽다. 노후 준비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사회적 금전적 물질적 성공이나 자녀 교육 같이 그동안 자신을 앞만 보고 달리게 한 대부분의 가치는 객관적 증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런 중년들이 갑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그동안 자신이 너무 앞만 보고 살았다고, 아내를 더 사랑했어야 했다고,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고. 사실은 객관적 지표로 명확히(잔인하게?) 드러나는 가치로는 승부가 안 나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 새로운 착각에 빠져보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야 그 가치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중년 남성을 대부분의 가족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동안 가족들이 수도 없이 얘기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중년 남성들이 저녁이면 소줏집에 모여 신세를 한탄하고, 일요일이면 산에 모여 먼 산을 쳐다본다.

남은 30년을 위한 착각의 선택을


바람나지도 않았는데 집을 나간 남자들은 대개 성찰을 너무 ‘쎄게’ 한 이다. 그들은 모든 걸 내려놨기에 이제는 진짜 안 돌아온다. 나머지 중년들은 대부분 억울하다고 토로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그들이 앞만 보고 달릴 때 그 물질적인 가치를 미리 내려놓은 극소수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한, 그들은 분명 선택한 것이다. 이제 그 결과가 두려운 것일 뿐이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분노하고 있기에는 아직 30년 이상의 새로운 ‘선택지’가 남아 있다. 우리는 매번 지나고 나면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선각자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후회한다. 그러나 지금 남이 하지 않고 내가 하지 않았던 선택을 한다면, 30년 후에는 누군가가 나를 선각자로 봐줄 것이다. 지금까지 어쩔 수 없어서 달려 왔다고 믿는 나와 같은 중년들에게는 남은 30년을 위한 새로운 착각의 선택이 절실히 필요하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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