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날씨가 포근해 아파트 뒤편의 북한산과 이어진 숲길을 걸었습니다. 메마른 진달래 가지에도 물이 오르는지 꽃눈이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날이 좋아 새들이 소풍을 왔는지 단체로 지저귀더군요. 말은 못하지만 나무들도 새봄을 맞으려면 속으로는 꽃몸살을 한창 앓고 있겠지요. 산책로 중간 양지바른 곳에 무덤 몇 기가 있는데 무언가 파릇하니 봄풀이 돋아나 있었어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민들레더군요. 민들레는 어디든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강인한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죠. 그걸 보고 있자니 예전에 제가 8년간 살았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옛집 생각이 물큰 났습니다.
우리 부부는 만 세 돌 지난 딸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세를 얻은 집은 다각형의 외관에 가구마다 테라스를 정원으로 쓸 수 있게 만든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우리 집은 거실에 방 한 칸 딸린 55m²의 작은 아파트였지만, 테라스에는 커다란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는 자투리땅이 있었어요.
어린 딸아이를 두고 온 첫해 겨울 내내 저는 너무도 우울했습니다. 고국에 두고 온 딸아이가 눈에 밟혀 겨우내 병이 날 지경이었지요. 겨울인데도 프랑스의 잔디가 늘 푸른 게 신기했는데, 어느 날 자두나무 아래 민들레가 여기저기 자라나 있는 것을 보았지요.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그게 마치 제 땅을 떠나 남의 땅에 그악스레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제 처지처럼 여겨졌거든요. 토종 한국 꽃이라 생각했던 민들레를 여기에서 만나다니! 민들레한테는 영토가 없더군요. 결국 친정 부모님이 딸애를 데리고 오셨고 온 집안은 마술처럼 새봄을 맞은 듯 생기가 돌았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딸아이가 있는 집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게 느껴졌지요.
봄이 되자 저는 자두나무에 딸을 위해 그네를 매주고, 부모님이 가져다주신 한국의 각종 채소 씨를 테라스의 흙에 뿌렸어요. 딸아이와 아침마다 새 떡잎에 눈 맞추고 인사했지만 모두 민들레만큼 끈질기게 자라지는 못하더군요.
봄이 오면 가끔 그 집의 정경이 눈물겹게 그립습니다. 작은 꽃모종처럼 먼 고국에서 온 딸아이. 그리고 몇 년 후에 프랑스 땅에서 싹을 틔운 꽃처럼 태어난 아들아이. 그 아이들을 꽃처럼 키우던 작은 화분 같던 정겨운 그 집에서의 일상들. 외국인 유학생으로 낯선 땅에서 절약하며 지낸 일상이 마치 충분한 물 없이 자라는 이 그림 속의 선인장 화분 같군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살 비비고 지지고 볶고 함께 뿌리를 내려 살고 있는 가족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요. 어디에 있든, 또 초라하고 작아도 식구들이 함께 모여 온기와 숨결이 스며 있는 집이라면, 우리는 봄꽃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산책길에서 돌아와 화분들을 정리했습니다. 좀 더 날이 따스해지면 꽃모종을 사다 화분에 심을까 합니다. 날이 어둑해지니 아파트에 불이 하나둘 켜집니다. 그게 꼭 작은 화분들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새봄에는 집집마다 화분에 꽃 하나씩 키우시죠. 한 화분 속, 한 뿌리의 꽃처럼 가족 모두 꽃처럼, 아니 꽃 보며 행복하시라고요. 사실 우리가 꽃을 키우는 게 아니라 어쩌면 꽃이 우리를 키우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지요. 그런 의미에서 퀴즈 하나. 이 화가의 그림에는 언제나 화면 어딘가에 ‘눈(目)’이 그려져 있답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한 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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