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정연욱]박관용 前 국회의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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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기면 대선 이긴다는 일반론은 적용되지 않는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얼굴색이 10, 20년은 젊어 보일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2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입담이 구수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여야 대표가 ‘싸우는 국회’를 끝내자는 대국민 약속을 하라고 주문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얼굴색이 10, 20년은 젊어 보일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2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입담이 구수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여야 대표가 ‘싸우는 국회’를 끝내자는 대국민 약속을 하라고 주문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4·11 국회의원 총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연말 대선을 앞둔 전초전 성격까지 띠어 여야는 정치적 명운을 건 열전을 벌인다. 어지러운 선거판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데는 현장에서 한발 떨어진 정치 원로들의 훈수(訓手)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74)은 16대 국회에서 6선(選) 의원을 끝으로 정계를 떠났지만 지금도 잘 다져진 건강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1967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시작해 40년 가까운 국회사의 산증인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에서 박 전 의장을 만나 20년 만에 총·대선이 함께 실시되는 올해 정국을 전망해 봤다.

―이번 19대 총선이 예전 선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역주의에서 좀 탈피했다고 할까. 우리 선거는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체제에서 민주-반(反)민주 구도이자 이념적 구도였다. 이번에는 복합적인 갈등구조가 표출되고 있다. 과거보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아지는 것도 특징이다.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보수적이어서 세대 간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3김 정치의 유산인 지역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소위 진보연합 세력이 형성됨으로써 이념성이 더욱 강화됐다. 아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구조의 선거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양당의 의석수를 전망한다면….

“두 당은 모두 과반(過半) 획득이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을 평가하자는 여론이 높아지면 새누리당에 불리할 것이다. 양쪽이 과반을 얻지 못할 경우 통합진보당 세력이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높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통진당이 교섭단체(의석수 20석 이상)를 달성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아마 근접하지는 않겠는가. 양당 공천 과정에서 당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낙천됐고 이 가운데 무소속 당선자가 나올 것이다. 이들을 꿔오든지, 끌어오든지 하겠지.”

그가 내리 6선한 지역구는 총선 때마다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부산 동래가 중심이었다. 그래서 부산 선거에 대한 그의 이해와 관심은 남다르다.

―이번 총선의 최대 접전지는 이른바 ‘낙동강 전투’로 불리는 부산일 것 같다.

“과거 부산에서 야당 지지율이 20% 선에 머물다가 요즘 40% 정도로 올라간 것은 맞지만 아직도 50% 벽을 넘지 못한다고 보는 게 맞다. 당장 이번에 지역성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문재인 조경태 후보 정도는 당선될 것이고, 공천 잘못으로 문제가 생긴 지역을 합쳐도 야당이 (전체 18석 중) 3, 4석 이상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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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야 공천을 평가한다면….

“여당은 홍준표 대표의 갑작스러운 낙마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왔다. 민주당 한명숙 대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총선을 준비하기에 각 당 사정이 다급해서 양쪽 다 무리수를 많이 뒀다. 여당은 초반에 공심위를 구성하자마자 현역 의원 25% 컷오프를 내걸었다. 선거가 임박해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난 연후에 그런 걸 해야지. 그전에 인기투표를 하면 정치 불신이 있는데 그냥 다 싫다고 하는 것 아닌가. 당선 가능성 있는 사람 대신에 ‘생짜배기(신인)’를 넣은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민주당은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입김이 강했다.”

―민주당과 통진당이 손잡은 야권연대의 위력을 어떻게 전망하나.

“일방적으로 통진당에 의석수를 보태주는 데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대선은 몰라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권 연대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한 대표가 단일화에 집착해 너무 많이 양보하는 바람에 민주당의 정체성이 희석됐다.”

―민주당의 주도권을 쥔 친노의 부활을 어떻게 보나.

“국민의 여망에 따라 친노 세력이 부활했다고 보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해 애절한 심정은 있지만 그에 대한 긍정 평가는 많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 이후 민주당 내에서 여러 세력이 뭉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고 본다.”

―MB(이명박 대통령) 심판론의 실체를 진단해 달라.

“MB 심판론은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가 토양이 됐다. 내가 (김영삼 정부) 청와대에 있을 때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70%나 됐다. 그런데 지금은 하층민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50% 정도나 된다. 이 대통령이 이런 점을 눈치채고 성장 위주에서 중도실용으로 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일찍부터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 등을 보완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젊은층의 분노가 폭발했다. 우리 국민의 쏠림 현상도 심하다. 이 대통령을 530만 표 차로 찍었던 것이 불과 3, 4년 만에 뒤바뀌었다.”

2004년 탄핵 역풍이 분 17대 총선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는 가장 어려웠던 선거였다. “17대 선거와 비교해 어떠냐”고 묻자 “그때 탄핵 역풍은 다분히 공영방송에서 만들어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 의사봉을 잡았던 국회의장으로서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는 책을 펴냈다. 그는 “탄핵 후 한 달 뒤 바로 총선이 있어서 탄핵 역풍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번엔 그때처럼 엄청난 차이가 안 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MB가 가장 실패한 대목은 무엇이라고 보나.

“일부 측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인사 난맥상이 증폭됐다. 소통도 문제다. 4대강과 관련해 야당과 대화를 하면서 2대강만 먼저 했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사와 소통 문제가 핵심이었다. 이 대통령은 버거운 사람은 잘 안 만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여의도 정치에 거리를 둔 것은 어땠다고 보나.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래서 소통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정치를 효율과 능률면에서만 판단하는 것 같다. 능률도 좋지만 대화를 통한 화합이 중요하다. 갈등과 균열이 심할 때 통합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총선 결과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나.

“총선 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면 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일반론이 있더라. 민주당 통진당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면 8개월 후 대선이 있기까지 야당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예산 삭감 등 옛 민노당의 색깔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것들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총선에서 이기면 대선도 이긴다는 일반론은 적용되지 않는다. MB 비판은 나올 것은 거의 다 나왔다. 그것보다 야당이 무슨 일을 할지 국민이 지켜본다. 특정 정당에 과반 주고나면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견제 심리가 발동될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인기가 좋을 때 재·보선 해보니까 안 되더라.”

―벌써 시중의 눈은 총선 이후 정국에 쏠려 있다. 여야 대선후보가 누가 될지가 관심거리다.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세론은 굳어졌다고 봐야 하나.

“여권은 박근혜로 굳어져 있다.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야권에선 ‘부산 대통령’을 내건 문재인 대세론이 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문재인으로 굳어질 것이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했지만 임기 중반에 뛰쳐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주로 행정부 쪽에서 일을 했다. 그는 이번이 아니라 다음 대선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 아닌가. 손학규 전 대표 등은 문재인의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안철수 바람’은 아직도 살아있지 않은가.

“안철수는 정치를 못할 것이다. 결단력이 없다. 정치를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국민 앞에 나와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저러다가 말 것 같다. 젊은 사람이 열광하니 꿈을 꾸는 모양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쪽이 다 안철수와 접촉하는 것 같은데, 안철수가 선을 그은 것 같다. 아마추어리즘이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선 기성 정치권에 분노하는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국민이 기존 정치질서에 분노할 때 안철수가 부채질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분노와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만에 불을 질렀지만 해답이 없으니 끝났다고 하는 것이다.”

박 전 의장은 통일 외교 문제를 다루는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을 17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 마포에 처음 냈을 때와 비교하면 크게 간소해졌다. 둘이 마주 앉아보니 꽉 찬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정치 일선을 떠난 지 8년이 지나 경제적 운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박근혜 리더십의 명암을 얘기해 달라.

“정치인의 리더십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때로는 강력하고, 때로는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이념 계층 세대별로 분화가 다양한 시대에 양보와 타협 관용이 절실하다. 강력한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박근혜는 대화와 타협 정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문재인 리더십은 어떤가.

“그가 인권변호사 시절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문재인은 대통령비서실장 외에 내세울 경험이 별로 없다. 그 사람의 철학을 국민은 모른다. 그 대신 문재인은 신사답고 겸손한 지도자 이미지다. 장관 하라고 해도 안 하고 겸양미덕이 돋보이는 게 그의 값어치다.”

―야권 연대가 대선 때까지 계속되리라고 보나.

“지금 진보세력 연합은 대선에 맞춰져 있다. 대선 때까지 통진당의 주장은 집요할 것이다. 양당 연합은 대선 때까지 갈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민주당이 재협상 운운하는 것은 통진당과 달리 반대 안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은 연속선상에 있다. 통진당이 의석수가 얼마 안 되더라도 공조를 깨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보좌파 진영과 달리 보수우파 진영은 분열되어 있다. 김종필(JP) 전 총리도 박근혜와 갈라섰다.

“JP는 박근혜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박근혜는 총선을 앞두고 통합 또는 연대 협상을 하면 자리 흥정하듯 비쳐 정체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박근혜와 얘기를 나눠 보니 총선 지나면 보수우파 세력 연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분열로 진 뼈아픈 경험이 있다. 진보좌파 진영은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간다.”

그의 답변은 일사천리였다. 현안에 대한 정리가 잘돼 있었다. 지금도 꾸준히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나와 다른 견해가 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게 정치다. 토론과 타협을 기피하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항복을 요구하니 싸움판이 벌어지고 최루탄이 터진다”고 말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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