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탄핵연대’와 ‘야권연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3일 03시 00분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의 투표함이 열렸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진 후보가 ‘노무현당’이었던 열린우리당 김홍신 후보를 눌렀다. 두 후보의 표차는 불과 588표였다. ‘탄핵풍(風)’을 기대하며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점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선거 결과를 풀어볼 수 있는 ‘숨은 코드’는 3위를 한 민주당의 힘이었다. 민주당 정흥진 후보는 9614표를 얻었다. 1, 2위 후보 표차의 16배가 넘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분당(分黨)으로 지지 세력이 쪼개졌다. 친노(친노무현)와 김대중 전 대통령(DJ) 세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탄핵연대’를 밀어붙이자 당시 여권의 지지층은 두 동강 났다. 열린우리당 낙선의 캐스팅보트를 민주당이 쥔 것이다.

당시 서울 전체 48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은 서초갑 등 3곳을 제외한 45곳에 후보를 냈다. 개표 결과 민주당은 단 1석도 못 얻었지만 한나라당은 16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탄핵연대’의 직격탄을 맞아 열린우리당이 근소한 표차로 석패한 곳은 종로구와 중구, 용산구 등 10곳에 달했다. 이곳에선 민주당 후보가 얻은 표만 흡수했어도 당락이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지만 한나라당이 개헌 저지선을 훌쩍 넘긴 121석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처럼 유리한 선거구도가 깔려 있었다. 한나라당은 ‘탄핵연대’의 최대 수혜자였다.

요즘 새누리당이 처한 위기 국면을 8년 전 탄핵정국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야권의 잇단 무리수로 새누리당 안에선 “그때보다 낫겠다”는 낙관적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8년 전엔 탄핵역풍이 거셌지만 선거 구도는 버틸 만했다. 이번엔 선거 구도까지 허물어졌다. 새누리당에 총선의 기본 토양이 더 척박하다고 봐야 한다.

야권은 선거구도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 민주통합당을 만들어 DJ민주계와 친노세력을 아우른 뒤 2단계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이뤘다. 8년 전 탄핵연대를 정확히 뒤집어 놓았다. 야권연대로 옛 민주노동당(2004년 서울 득표율 3.5% 정도) 지분까지 챙긴 셈이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 등 수도권에선 불과 몇천 표차로 희비(喜悲)가 갈린다. 후보의 개인기를 무시할 수 없지만 선거 구도를 짜는 것은 선거 전략의 기본이다.

세대별 표심(票心)의 향배를 쥔 40대는 아직 새누리당에 가슴을 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 이어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 뚜렷해진 40대의 반감이 이어지고 있다. 총선일이 한 자릿수로 좁혀졌지만 서울의 전통적인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도 분위기가 안 살아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말 새누리당이 서울지역 판세를 자체 분석한 결과 ‘백중우세’ ‘우세’ 지역은 전체 48곳 가운데 13곳(27%)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그 힘들었던 탄핵 때도 살아남았는데”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간 낭패를 당할 것이다. 탄핵의 착시(錯視) 현상에서 벗어나야 길이 보일 수 있다. 작년 말 서울시장 선거 때 표심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민간인 사찰 폭로 정국 속에서도 새누리당은 40대를 중심으로 한 ‘스윙 보터(swing voter)’의 마음을 잡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탄핵연대#야권연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