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발표 3일 전 숨을 거둬 세계인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랠프 스타인먼, 20세기 과학사 중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받는 유전자(DNA) 이중나선구조 해독자 제임스 왓슨 그리고 한국인 첫 과학 분야 노벨상 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김빛내리 교수.
이 세 명의 과학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박사 후 과정(Post doctor)’에서 자신의 핵심 연구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다. 흔히 ‘포닥’으로 불리는 박사 후 과정은 과학자의 일생에서 중요한 시기다. 지도교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과제를 받아 진행하는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한 세 명의 과학자 외에도 수많은 저명 과학자의 주요 연구 성과가 박사 후 과정에서 시작됐다. 노벨상의 씨앗이 이때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시기는 연구에 대한 의욕과 열정 그리고 집중력이 최상일 때다.
세계 최대 생명과학연구기관인 미국 국립보건원에는 한국인 포닥 200여 명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초봉은 4만2000달러로 한국 대학의 계약직 박사 연구원에 비해 월등하다. 미국 주요 대학과 연구소에서 포닥은 교수의 지시를 받는 학생이 아니라 연구를 주도하는 주체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국내 포닥을 포함한 신진 연구자 대부분은 씨앗이 싹을 틔우기 전에 말라 버릴 정도로 열악한 연구 환경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박사 배출은 매년 증가해 2009년 기준 1만 명에 이른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더라도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깊이 있고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출연연구소, 대학, 기업연구소 등 정규 일자리도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이 대학에서 단기 계약직 형태로 고용돼 교수의 연구를 보조하고 있다. 고용기간은 1년으로 매년 갱신해야 하고 10명 중 4, 5명은 4대 보험 혜택도 없다. 결국 생계를 위해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거나 외국으로 떠난다.
올해부터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책임연구원급 포닥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포닥을 포함한 신진 박사 연구인력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연구 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리서치 펠로(Reserch Fellow)’ 제도를 신설했다. 새로운 연구자층을 대학 안에 신설하고 연구책임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대학이 리서치 펠로 고용기준(월 급여 300만 원 이상, 고용기간 3년 이상, 4대 보험 가입)에 맞게 박사 연구인력을 고용하면 정부는 이들에게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대학이 우수한 박사 연구인력을 경쟁적으로 리서치 펠로로 고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정부 연구개발(R&D)사업 선정 시 리서치 펠로 고용 현황을 반영하는 등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이사회가 최근 발표한 ‘2012년 과학·공학 지표’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10개국의 R&D 투자가 사상 처음 미국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국가로는 여전히 미국이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세계 지식의 축이 아시아로 움직이고 있음을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매년 10% 이상 R&D 투자를 늘려 ‘세계 R&D 투자 빅 7’의 자리에 오른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에서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정책의 중심은 ‘젊은 과학자’이고 그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우리나라 젊은 과학자들이 새싹을 틔우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도록 끊임없이 R&D 투자의 단비와 함께 기름진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 그 시작이 ‘리서치 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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