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후반 충청우도에서 펴낸 ‘우두절목’ 등에 따르면 두창(천연두) 예방을 위한 우두 접종비는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 정도인 5냥이었다. 그 시절 먹고사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민초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두 접종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맞아야 하는 강제 사항이었고, 접종을 받지 않아 두창에 걸리면 벌금으로 27냥이나 물어야 했다. 일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부에서 일절 접종비를 지원해 주지 않아 그러지 않아도 외래에서 넘어와 낯설게 느껴졌던 예방접종은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시키는 미운털로 작용했을 것이 뻔하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지난 올해, 우리나라 예방접종사업에 큰 변화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질병은 부모들의 가장 큰 육아 부담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의료행위가 비용 때문에 주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정부가 어린이 필수예방접종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고 한다.
이번 정부의 예방접종 지원 확대의 골자는 평균 한 번 접종하는 데 2만2000원가량 하는 병의원 필수접종을 한 번에 5000원만 내면 맞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부 자치단체는 자투리 5000원까지 모두 부담해 무료 접종이 실시되는 지역도 적지 않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이 전국 7000곳으로 늘어나 맞벌이 부부들이 퇴근 후나 주말에 동네의원에서 예방접종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듯 과거에 비해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좋아졌지만 전염병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과거 예방접종이 두창 예방을 위한 우두 접종 하나뿐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다양한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또 발생함에 따라 국가에서 정한 필수접종만 18번이나 맞아야 된다. 기타 예방접종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서른 번에 가까울 정도로 많아졌다.
따라서 예방접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중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 예방접종 후 추가 예방접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2000∼2001년 홍역 대유행이 일어난 사례를 보면 예방접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만 3세 미만 대상 기초 예방접종 비율은 80∼90%로 높지만 만 4세에서 12세까지 받는 추가접종 비율은 40∼50% 선에 그치고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방심한다면 홍역과 같이 언제든지 전염병이 다시 유행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담 없고 간편한 예방접종 환경이 조성된 것과 비례하여 예방접종의 중요성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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