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문재인 수석의 전화

  • Array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주로 검찰 간부 출신이 맡던 자리에 노 대통령이 비(非)검찰 출신 변호사를 앉힌 것은 의외의 인사였다. 문 고문은 회고록 ‘운명’에서 “그 시기 민정수석실의 첫째 과제는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지난날 민정수석실이 ‘군림하는 청와대’의 상징이었다며 청와대가 법에 없는 ‘초과권력’을 내놓아야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밝혔다.

▷4·11총선에 출사표를 낸 문 고문이 청탁 논란에 휩싸였다. 유병태 전 금융감독원 국장은 부산저축은행이 경영난을 겪던 2003년 8월 문재인 민정수석으로부터 ‘대량 인출 사태가 생기면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나올 수 있으니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최근 검찰에서 진술했다. 저축은행의 생사여탈권을 쥔 금감원이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부산저축은행은 이후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 고문이 대표변호사인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의 저축은행 한 곳으로부터 50억 원대의 사건을 수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 고문은 ‘전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청탁 전화는 하지 않았다’는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올해 2월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 청탁 의혹을 제기하자 민주당은 “즉각 나 전 의원과 김 판사를 수사해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전 의원의 19대 총선 예비후보 사퇴도 촉구했다. 나 전 의원은 “청탁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나중에 검사와 통화를 한 정황이 드러나자 김 판사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전화를 한 것 같긴 하다”고 진술했다. 법조문은 달달 외울 문 고문과 김 판사가 왜 중요한 통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문 고문이 전화를 한 게 사실이라면 명백한 월권(越權)이다. 민정수석실의 고유 업무는 민심 동향 파악과 공직 기강 단속 등이다. 민정수석비서관이 경제수석비서관을 제쳐놓고 금감원 국장에게 저축은행 처리 지침을 줬다면 ‘군림하는 초과권력’이 아닐 수 없다. 유 전 국장과 일면식도 없다는 문 고문이 어떻게 청탁을 했겠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일면식 없는 실세 청와대 수석의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은 청탁을 넘어 ‘분부’가 될 수 있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횡설수설#이형삼#문재인#총선#청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