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씩 ‘공짜의 대가’를 뼈아프게 되새기고 있다. 스마트폰 한 번 써보려고 휴대전화를 바꾼 결과다. 목돈 들이는 게 아까워 선택한 공짜 폰은 공짜가 아니었다. 사실상 단말기 할부금이 포함된 비싼 요금이 인쇄된 청구서를 받아들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핵심 경구(警句)가 새삼 다가온다.
휴대전화 시장만큼 공짜의 유혹이 판치는 곳이 총선을 며칠 앞둔 정치권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여야 복지공약에 들어갈 돈은 5년간 최소 268조 원이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공짜를 앞세운 정책이 수두룩하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발표한 164조7000억 원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시한 89조 원을 합치면 253조7000억 원으로 재정부 발표와 별 차이가 없다. 이런데도 재정부의 분석이 나오자 정치권은 발끈하며 ‘관권선거’ 운운한다.
뻔한 공짜전략이 먹힐까 싶지만 정치적 효과는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무상복지 공약에 찬성하는 성인 비율이 64.4%로 반대(35.6%)보다 훨씬 높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무상복지 재원 마련 방법으로는 부자증세(39.2%)와 탈세예방(37.5%) 등이 꼽혔다. ‘무상복지를 하되 내 주머니에서는 돈을 내긴 싫다’는 뜻이다.
공짜 복지를 기대하는 이들은 선진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 일본의 노다 내각은 현재 5%인 소비세(부가가치세)율을 2015년까지 10%로 올리는 방안을 지난달 말 국회에 냈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총리는 재정위기 탈출을 위해 9월 중 부가세율 인상에 나설 계획이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19.6%인 부가세율을 21.2%로 높이겠다는 대선공약을 내놨다.
부가세 인상은 정치적으로 큰 모험이다. 1997년 일본의 하시모토 내각은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렸다가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1993년 캐나다의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는 부가세를 전면 실시했다가 여론 악화로 물러났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들이 부가세를 올리려는 이유는 거덜 난 재정을 확실하게 보충할 다른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공짜 복지 공약을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은 부가세율 인상이다. 경제전문가도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걷힌 국세 192조4000억 원 중 부가세는 51조9000억 원이다. 야권의 주장대로 대기업 법인세와 고소득층 소득세 세율을 높여봐야 몇조 원 더 걷힐 뿐이다. 이에 비해 현재 10%인 부가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로 높이면 수십조 원이 마련된다.
하지만 한국의 어느 정치인도 부가세 인상을 입에 올리진 않는다. 간접세인 부가세는 가난하건 부유하건 모든 국민이 돈을 쓸 때 무조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주머니를 털어 복지에 쓰는 데 동의한 사람도 앞으로 모든 소비에 8%포인트의 세금을 더 내라는 걸 반길 리 없다. 정치인이 표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공짜 복지로 구멍 나는 재정을 당분간 국채 발행 등으로 눈속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 공짜 복지를 주장해 정치적 떡고물을 챙긴 정치인 중 상당수는 그때 퇴장했겠지만 결국은 엄중한 현실 앞에서 다른 선진국처럼 부가세 인상 등을 통해 국민에게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복지에 욕심 부린 걸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투표장에 들어서기 전에 공짜 공약의 계약조건부터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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