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시끄러웠던 선거가 끝났다. 선거 과정에서 잡음이 많은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시끄러움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징표이기도 하다. 나는 최근 한국 국적을 얻어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했다. 집으로 투표 안내문이 왔지만 투표 당일 안내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투표소로 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또 투표용지를 두 장 받아 들고 기표소로 들어간 뒤 후보 이름에만 도장을 찍고 나와 정당 투표를 위해 재차 들어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정당투표 깜빡…또 기표소 들어가
이런 실수조차 기쁘기만 했다. 평생 처음으로 한국 땅에서 국민의 대표를 뽑기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제는 뭘 잘못해 감옥에 가더라도 한국 땅 감옥에 가니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은 서로 부딪히고, 소리도 가끔 지르고, 술도 함께 하며 서로 비비고 산다. 그렇게 서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게 한국의 정(情)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는 ‘그놈의 정 때문에’ 코미디 같은 일을 했다. 지역과 정당을 넘나들며 지원 유세에 나선 것이다.
먼저 광주에서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구를 도왔다. “전라도에서는 불어(부러)를 잘해야 합니다. 다들 불어 잘 아시죠? 해불어, 허지 말아불어…. 그러니 이번엔 바까불어!”
내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는 친한 친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유세차량을 타고 다니며 “순천이 우주의 중심 아닙니까? 우주의 중심에서는 창조적인 선택을 합시다!”라고 호소했다. 서울에서도 고향 형님이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와 선거운동을 도왔다.
선거 전날에는 전남 여수에 다녀왔다.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여수 출신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1번! 1번입니다. 1번 확 찍어부러!”
이렇게 여야를 막론하고 당을 바꿔 가며 유세하는 모습이 스스로도 어색했지만 4명의 후보는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여서 ‘정’이 무서워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선거를 놓고 사람들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유세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피부로 느낀 점은 세대 갈등이었다. 순천 웃장터에서 “2번 찍으소, 콕 찍어부러 잉” 하며 지지를 호소하자 나이 든 상인들은 “잘될 거요. 걱정마소 잉”이라며 응원했다. 하지만 한 대학에 가자 학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의 눈길과 태도에서 나는 마치 ET 동생이라도 된 것 같았다. 젊은이들이 이른바 투표 인증샷을 찍으면서 선거에 적극 참여하는 것 같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에게만 배타적 지지를 보낼 뿐 나이 든 세대로 대표되는 ‘다른 진영’에 대해서는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했다. 순천에 있지만 그 대학은 한국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았다.
피부로 느낀 세대간 갈등 안타까워
이념과 사상의 차이는 얼마든지 존재해야 하고 그 차이를 줄이는 노력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하지만 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세대 간 반목은 견해차를 넘어 부모와 자식,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 간 대화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랫목이 사라지고 중앙난방이 시작되면서 한국 가족은 급격히 개인화되고 있다.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사는 문화는 한국인과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 사람들을 바꾸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성숙한 민주주의와 존중, 타협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를 법제도 안에서 찾기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실천을 통해 실현하는 편이 쉽다. 어른은 아이와 지혜를 나누고, 아이는 어른을 존중하는 것이 타인과 잘 살아가기 위한 민주주의 실현의 첫 단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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