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立法 불임증 국회’ 만들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9일 03시 00분


이른바 ‘몸싸움 방지 법안’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은 국회의장의 법률안 직권 상정권을 제한하고, 본회의 토론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허용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의원들이 시간의 제한 없이 발언함으로써 합법적으로 의사(議事)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다. 현행 국회법에는 의원 발언이 15분을 넘을 수 없게 돼 있다.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려면 재적 5분의 3 이상 의원의 찬성이 필요하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여야가 맞서는 쟁점 법안을 처리하려면 전체 의석의 60%인 18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필리버스터가 도입되면 새누리당처럼 차기 국회에서 간신히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독자 입법(立法)을 할 수 없게 된다.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약 170석의 압도적 과반을 확보하고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몇몇 의안을 제외하고는 단독으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사실상 입법 불임증(不妊症) 국회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을 기대했던 민주통합당은 약 10개월 가까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미루다가 새누리당이 예상을 깨고 과반을 확보하자 적극적인 처리 자세로 돌아섰다. 민주당이 당장은 새누리당의 단독 입법을 저지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개정안에 찬성했을 수 있으나 앞으로 민주당도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때는 필리버스터가 민주당이 추진하는 입법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헌법 49조는 국회 입법 시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시키는 ‘단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단순 다수결’보다는 5분의 3 또는 3분의 2 이상 등 특정 다수가 찬성해야 법안을 통과시키는 ‘가중 다수결(supermajority)’이 합의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합의는 쉽지 않기 때문에 국회의 헌법 개정안 의결이나 탄핵소추안 발의 등 소수자 보호나 권력분립 보장의 필요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미국 의회에서도 필리버스터는 상원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개정안은 필리버스터를 도입하는 대신에 불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의원에 대한 징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3개월 출석 정지나 수당 삭감 정도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현행 국회법으로도 폭력 의원을 징계할 수 있지만 국회는 전기톱 해머 최루탄을 사용한 의원에게조차 징계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필리버스터 도입으로 양대 정당은 몸싸움을 할 필요가 줄어들지 모르지만 통합진보당 등 소수 야당이 폭력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면 가중 다수결 제도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사설#총선#국회의원#국회#입법#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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