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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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9일 03시 00분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하늘에 작은 공이 하나 올라간 것 가지고 걱정할 필요 없다.”

1957년 소련이 발사해서 궤도에 진입시킨 스푸트니크 1호는 ‘우주’라는 선입관을 갖고 보면 그야말로 ‘작은 공’ 수준이다. 지름 58cm에 무게 84kg 정도다. 지름 24cm에 무게 600g인 농구공과 비교하면 그 크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스푸트니크는 상공 900km의 궤도를 돌면서 온도와 공기 밀도를 측정해서 지구로 송신하는 간단한 전파발신기 수준이지만, 인간이 만든 것으로는 처음으로 중력에 끌려 떨어지지 않고 지구 둘레를 공전한 물체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우주 정복의 신호탄’인 셈이다.

당시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이 먼저 거둔 인류 최초의 우주 성과에 대해 ‘작은 공’ 수준으로 평가절하했지만, 당시 미국이 받았던 충격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이 과학기술에서 소련에 뒤졌다는 자존심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는 명예를 다투는 과학보다는 생존이 걸린 국방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1941년 일본의 느닷없는 진주만 공습을 절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기억하고 있는 미국은 스푸트니크를 보면서 소련이 당장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것 같은 긴박한 공포에 휩싸였다. 히로시마의 ‘한 방’을 잘 아는 미국으로선 소련이 ‘작은 공’에 전파발신기가 아니라 원자폭탄을 실어 발사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상상이었다.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은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쟁이 가족에게 강제 철거를 알리는 계고장이 날아오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인민의 지상낙원’인 북한을 상대로 핵을 ‘철거’하라고 하는 미국의 ‘계고장’과 마찬가지일까.

그러면 북한을 ‘난쏘공’의 난쟁이에 비유할 수 있겠다. 북한군의 체격이 한국의 초등학생보다 왜소한 걸 가지고 굳이 ‘난쟁이’에 빗대는 게 아니라 폐쇄적인 북한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에 끼지 못하는 ‘난쟁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난쏘공’에서 공은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우주에 관한 기본법칙’을 운운하며 아버지는 ‘까만 쇠공’을 쏘고 싶어 했다. 북한이 이번에 쏜 광명성 3호가 ‘작은 공’이든 ‘쇠구슬’이든, 그 ‘공’은 북한이 절대 놓지 않으려는 절박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 ‘공’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송출하든, 핵폭탄을 실어 나르든….

북한은 이번에도 ‘작은 공’을 쏘아 올리는 데 실패했다. ‘공’을 쏠 돈으로 ‘쌀’을 사야 했다느니, ‘공’을 쏘지 못하게 원천봉쇄해야 한다느니, 한국판 스푸트니크 쇼크가 필요하다느니, 한국은 ‘더 큰 공’을 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느니… 의견이 분분하다.

‘난쏘공’의 도입부에 나오는 큰아들 영수의 독백을 들어보자.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1970, 80년대 도시 빈민의 아픔을 슬슬 잊고 싶어 하는 ‘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최근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주민의 고통이 ‘난쏘공’ 가족의 절규처럼 들려온다. 그런데 ‘아버지’는 ‘더 큰 공’을 만지작거리며 쏘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광화문에서#허두영#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빈민#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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