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 오기까지 올해는 꽤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기나긴 겨울을 넘기고 꽃이 피는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급한 이유는 봄에 피는 개나리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다른 나라의 꽃처럼 잎이 나고 그 다음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추운 겨울을 견뎌낸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꽃이 우선 피고 잎이 나중에 날 정도로 성급하다는 것이다. 이런 유쾌한 비유를 해 준 사람이 바로 내게 한국을 가르쳐 준, 프랑스 신부 출신 여동찬 전 한국외국어대 교수다.
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1979년에 그분을 만났다. 첫 만남에서 우선 그분의 완벽한 한국어 실력에 놀랐다. 한국어 습득 초기이기에, 더구나 나처럼 유럽에서 자랐으면서도 전혀 언어체계가 다른 그 어려운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에 나는 그분을 절로 우러러봤다. 게다가 그분은 한술 더 떠서 한자에도 능했으니 말이다. 나도 당시 외국인 대상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하는 등 한국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나와는 수준이 달랐다. 내게는 좇아가야 할 목표가 생겼다. 수많은 한국인 친구와 밥 먹고 토론하며 때론 술자리도 가지면서 한국어를 갈고닦았다. 그 덕분일까. 요즘 나는 대기업 사장단 앞에서 ‘관광산업은 희망산업’이라는 강연을 할 정도이고 지난해엔 베스트 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분에게서 받은 감동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톨릭 신부이지만 불교 지식에도 해박했다. 1956년부터 한국에 살면서 ‘고려사’를 한문 원본으로 읽는 등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그의 연구는 끝이 없었다. 사제로 한국에 왔다가 불교 철학에 심취해 환속한 후 평범한 한국인의 길을 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불교는 물론이고 한국의 토속신앙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 전반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그분에게서 받은 영감(靈感)의 덕이 큰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감동과 영감을 다른 많은 외국인과 나누기 위해 ‘영감 받으러 한국 오세요(Korea-Be Inspired!)’라는 말을 한국관광 홍보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말과 문화를 익히고 나서 여 전 교수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제언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애정이 있기에 안타깝고, 바로 내 일이라서 안타까운 것이다. 그 마음을 담아 그분은 ‘외국인이 본 한국과 한국인’ ‘좋은 한국인 싫은 한국인’ ‘이방인이 본 한국인’ 등의 저서를 잇달아 출간했다. 자신이 가장 아끼기에 남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다독이고 싶은 마음 또한 지금의 내가 품고 있는 마음과 맞닿는다. 나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답답한 나라 한국’ 등의 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독려하고자 했다.
아쉽게도 몇 달 전 83세로 세상을 떠난 그분의 본명은 로제 르베리에였다. ‘여동찬’이라는 이름은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대구의 한 신부가 ‘동쪽(동·東)을 도우라(찬·贊)’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라고 들었다. 나 역시 한때 한국을 돕는다는 의미의 이한우(李韓佑)라는 이름을 가졌던 바 있다. 물론 지금은 한국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의지를 담은 이참(李參)이지만 말이다 .
아무튼 여 전 교수의 한국 사랑은 이처럼 그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 닮았다. 아니, 내가 그분의 앞선 발자취를 따라간 것이 옳았다. 무심코 한국에 빠져들고, 그러다 보니 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고, 그 사회에 참여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그러하니 말이다. 더구나 나한테는 한국 관광을 세계에 알리는 열정적인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공기업의 수장 자리까지 맡겨졌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늘 앞선다. 단지 ‘최초’라는 기록으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 나를 쳐다보는 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작은 발자취라도 남기기 위해 어느새 성질 급한 한국인이 되어 버린 나는 바쁘게 이 봄을, 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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