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안아 봐도 돼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0년 포츠담에서 열린 기민당 연설에서 “독일의 다문화 사회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독일은 이주민의 도움 없이는 꾸려갈 수 없는 사회지만 이주민들도 독일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독일어 공부부터 하고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인구 8200만 명 가운데 외국계는 1600만 명. 이 중 터키계 이슬람교도가 250만 명이다. 이들은 독일 주류사회와 동떨어진 별개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살면서도 독일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다 누린다.

‘문화 공존’에 거부감 많은 한국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프랑스로 왔다면 (프랑스라는) 한 사회에 녹아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르카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고 집시를 추방하는 정책을 폈다.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이고 사르코지 대통령도 헝가리 이민 2세다. 비주류가 최고 지도자가 된 이 국가들의 톨레랑스(관용)를 보여준다.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심리는 반(反)이민 파시즘이었다. 경제위기와 더불어 심각해지는 반이민 정서의 일단을 노출한 사건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가 된 이자스민에 대한 일부 누리꾼의 반감은 단순히 새누리당 승리에 대한 일부 야권 지지자의 불복(不服)이라기보다는 한국인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방인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다. 많은 사람이 그가 다문화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국회의원이란 개인에게는 성공신화요, 전체 다문화 가정에는 한국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상징한다. 불법체류자 무료 의료지원, 고향 귀국비 지원 등 인터넷에 떠도는 이른바 ‘이자스민 공약’은 허구였지만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차별철폐정책(Affirmative action)처럼 조만간 우리나라 대학들도 다문화 자녀 특례입학 규정을 만들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방인들이 ‘내 몫’을 본격적으로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와 공포가 이자스민 공격 심리에 깔려 있다.

최근 발표된 다문화수용성지수를 보면 우리의 다문화 수용성은 100점 만점에 51.17점으로 중간 정도다. 어느 국가든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문화 공존’에 대해 유럽 18개국은 찬성 비율이 74%인 데 비해 한국은 36%에 불과했다. 일단 한국에 왔으면 한국법을 따르라는 정서는 독일식 다문화(多文化)보다는 프랑스식 동화(同化)주의에 가깝다. 한국에서도 파리에서처럼 이민자그룹과 주류사회의 갈등이 폭력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理性이 본능 눌러야 사회 발전해

생물학자들은 낯선 것을 경계하는 습성이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 본능이라고 분석한다. 인간은 이런 본능에 저항하면서 낯선 것을 탐험하고 포용하면서 문명을 일구었다. 역사도 언제나 본능과 순수성보다는 이성과 다양성을 택한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세계화 시대에 이방인을 배격하고 “우리끼리 잘살자”며 발전한 나라는 없다.

다문화에 대한 저항감, 탈북자를 이류시민 취급하는 한국 사회, 급우에 대한 집단따돌림(왕따)과 폭력.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런 현상을 관통하는 맥락은 ‘배제의 메커니즘’이다.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톨레랑스 정신의 핵심은 나와 다른 개인의 삶과 생각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자스민 공격은 단순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가 아니라 한국의 톨레랑스를 예리하게 시험하는 사건이다. 영화 ‘완득이’에서 이자스민이 연기한 ‘완득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던진 “안아 봐도 돼요?”라는 물음에 우리가 답할 차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오늘과 내일#정성희#똘레랑스#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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