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은 동아일보 및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한 얘기인 이상 고소가 취하되지 않아 검찰 조사로 이어진다면 경찰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유족에 의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하던 2010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8월 국회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이 발언이 문제되자 “더 이상 제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대답을 거부한 이후 줄곧 함구했다.
조 청장의 발언은 유족이 고소를 취하하면 자신도 얘기를 하지 않겠다며 고소 취하를 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찰 총수가 애초에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지금 와서 유족을 압박하며 거래하는 행태를 드러내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검찰은 유족의 고소 이후 1년 9개월이 지나도록 조 청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가 곧 경찰청장 자리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는 만큼 검찰은 퇴임 후에라도 조사에 나서야 한다.
노 전 대통령 유족 역시 조 청장에 대한 고소가 단순히 결백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니었다면 진실 규명을 위해 고소를 취하하지 말고 검찰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여기서 조 청장과 타협해 대충 접고 넘어가면 뒤가 구린 것처럼 비치고 어떤 식으로든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자금과 관련한 의혹은 올 2월 다시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의 진실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쪽은 조 청장이나 경찰이 아니라 검찰일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조 청장의 발언에 대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기록을 덮어 버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고소 고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진실을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될 바에야 이번에 확실히 진실을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