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보시라이 사건과 中정치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자 충칭(重慶) 시 서기였던 보시라이의 구속과 부인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살해 혐의 소식이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의 대표 언론들도 이 사건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보시라이를 검거해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이토록 충격적인 일은 찾아볼 수 없다. 보시라이가 어떤 최후를 맞든 이번 사건은 분명히 중국 정치발전 과정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중국 정계에 충격을 준 건 보시라이가 정치국 위원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5년간 충칭에서 재직하며 주창해왔던 이른바 ‘충칭모델’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다. 충칭모델은 ‘창홍타흑(唱紅打黑)’으로 요약된다. 창홍은 마오쩌둥(毛澤東) 때의 노래를 부르며, 당시의 순결했던 중국 사회주의 원형을 동경하는 것이다. 마오 시대에는 부패가 만연하지 않았고 부는 평등하게 분배됐다. 타흑은 범죄조직을 해체하고 이들과 결탁한 관리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충칭모델은 바로 시장경제에서의 공평과 사회정의를 제창하고 기층 인민의 민생에 관심을 돌릴 것을 주장하는 운동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중국 정치와 경제 체제가 초래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법이다.

하지만 창홍타흑이 시작되면서 충칭모델에 대한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법을 무시하는 타흑은 ‘홍색공포’로 변질됐다. 더욱이 창홍은 극좌사상으로 바뀌어 ‘죽은 혼이 시체를 빌려 부활하는’ 도구가 됐다. 창홍의 노랫말은 마오 시대의 공정과 청렴을 기리는 것이지만 이런 정치적 이념은 정치적 진보가 아닌 퇴보를 불러왔다. 마오 시대의 중국을 완곡히 표현하자면 정치적 이상주의이고, 가감 없이 말하자면 극단적인 개인통치이기 때문이다. 마오 시대의 문화대혁명은 재난이며 악몽이다. 이 때문에 충칭모델의 마오쩌둥주의 찬양은 중국 엘리트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보시라이 구속과 함께 충칭모델은 붕괴됐다. 하지만 중국인들을 더욱 놀라고 화나게 한 건 보시라이가 검소한 생활과 확고한 이상으로 무장한 혁명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꾸며낸 창홍타흑은 극단주의적인 정서를 선동하고 허망한 경제발전을 조작했을 뿐이다. 결국 민의를 우롱하고 개인의 권력 야심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당 고위 관리가 이런 방식으로 직할시인 충칭을 5년간 통치하다 심복의 망명 기도 이후 그동안의 허물이 백일하에 폭로됐다는 점에서 중국의 법치와 민주의 결핍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978년 개혁, 개방 이래 중국의 경제와 사회 발전은 거대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국가를 다스리는 방식은 날로 낙후돼 왔다. 중국 정치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민의가 수렴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개혁과 민주화는 늘 우유부단했고 오늘날 고도의 분열에 이르게 됐다. 지도부 내에서는 지금과 같은 보수기조를 유지하는 분파, 좌파 사상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세력, 변혁을 요구하는 자유주의 계파 등 3대 정치세력 간의 쟁론이 전례 없이 치열해졌다. 여기에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사회 내부의 사상적 불안을 더욱 격화시켰다. 좌절과 사상대립으로 점철된 오늘날의 중국이 진정으로 생기와 희망이 넘치는 미래의 중국으로 발전하려면 정치 지도자들이 민심에 순응하고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화에 입각한 국가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보시라이 사건의 갖가지 내막은 그다지 특별한 의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지도부가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 이를 계기로 대담한 정치 개혁의 서막을 열 수 있는지다. 그렇지 않다면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정치의 또 다른 퇴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세계의 눈#주펑#중국#보시라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