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꽤 되었다. 이 나라는 나에게 늘 따뜻해 조국과도 같다. 물론 초기에는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나라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내게도 한국인의 성격이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한국인의 특징 중 제일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겉모습에 많은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아마 한국인은 아시아에서 가장 멋을 많이 내고 외모에 많은 관심을 두는 사람들일 것이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옷을 잘 입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늘 애를 쓰는데 특히 몸매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살찌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해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누가 봐도 군살이 별로 없는데도 “살쪘다”고 되뇐다. 저도 모르게 언론에 등장하는 다이어트 열풍을 좇아 ‘살 좀 뺐으면’하는 병 아닌 병을 앓고 있다. 온갖 미디어에는 젓가락 몸매를 가진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늘 화제의 대상이 된다. 젊은층은 이들을 보며 “몸매 진짜 대박이네” “날씬하다 못해 말랐구나”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몸매 비결 공유해요” “스타의 다이어트 식단 좀 알려 주세요”라며 그들의 몸매를 욕심낸다. 주위의 젊은 여성들이 인형처럼 마른 팔다리를 위해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왠지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날씬하고 예쁜 몸매가 선망의 대상이 되다 보니 좋은 몸매를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도 생겨나고 있다. ‘각선미가 좋다’ ‘말랐다’ ‘몸짱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각종 음료나 음식 마케팅에도 ‘날씬한 기분’ ‘날씬한 여유’ ‘날씬한 행복’ 등 ‘날씬하다’란 형용사와 별 상관없는 단어들이 결합돼 쓰인다. 한국 사람들이 살 빼는 데 느끼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옷을 파는 매장도 분위기에 편승해 ‘44특별 사이즈’라는 숫자로 여성들을 현혹한다. 반대로 체중이 좀 나가는 고객에게는 큰일이나 난 듯이 ‘빅 사이즈’라는 수식을 붙인다. 언젠가는 한국 여성들이 입는 옷 치수에 미디엄(M) 사이즈는 사라지고 스몰(S) 사이즈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원래 ‘날씬하다’라는 형용사는 전체적으로 몸매가 균형 잡혀 살이 많지도 적지도 않아 보기 좋은 모습을 가리킨다. ‘말랐다’는 말은 ‘날씬하다’는 말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살이 빠져 야윈 상태를 의미하는데, 영양부족이나 식욕의 부재로 인해 지나치게 살이 없어 보여 오히려 살을 찌워야 할 때 쓰는 말이다. 젊은 한국 여성들이 ‘날씬하다’는 말보다 ‘말랐다’는 말을 더 좋아하고 젓가락과 인형 같은 팔다리를 원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한국인들은 어느 민족보다도 부지런하고 한 가지 일을 시작해 손에 잡으면 아주 제대로 끝까지 한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멈추지 않는, 도전심 강하고 인내심이 많은 민족이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에게서 보고 배운 점 역시 본인의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태도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능력을 다이어트에도 발휘한다는 점이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물과 과일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타고난 ‘체형’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살이 조금 붙어도 몸매가 여전히 예쁘고, 어떤 사람은 날씬한 것 같은데도 몸매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살을 빼기보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관리를 하는 것이 심신 건강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