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레임덕은 권력이 자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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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하종대 사회부장
하종대 사회부장
“정치는 사람하고 돈 빚지는 것 아니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수억 원대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다음 날인 23일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하다보면 남한테 신세도 지고 돈도 얻어 써야 한다는 말이다. 당당하게 말했지만 구치소로 향할 수도 있는 자신의 운명까지 권력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권력은 뜨고 진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임기를 10개월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차가운 운명과 맞닥뜨리고 있다.

단임제 대통령제에서는 5년을 주기로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 비리가 터진다. 임기 말이면 어김없다. ‘권력의 꿀맛’에 취해 월권과 비리를 저지른 그들에게 정권 말기는 ‘인과응보의 시절’이자 ‘수난의 시기’다.

거악(巨惡) 척결의 중임을 맡은 검찰에는 대목이다. 이때가 되면 전국의 특수부는 물론이고 형사부 검사까지 모두 ‘대어 낚기’에 여념이 없다. 전국 1900여 명의 검사가 최고 실세를 잡아들이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마치 검사들이 100m 경주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 대통령과 권력을 나눠가졌던 형 이상득 의원은 검찰의 집요한 공세를 받고 있다. 대검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울산지검에서 그의 주변을 뒤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말엔 ‘소통령’으로 불렸던 YS의 차남 현철 씨와 ‘금고지기’였던 홍인길 전 대통령총무수석이 한보 비리로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02년엔 두 아들 홍업 홍걸 씨가 각각 수십억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초인 2003년엔 DJ의 최측근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영어의 몸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임기 뒤에는 ‘우(右)광재’로 불렸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교도소에 갔다. 포괄적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세상과 인연을 끊는 비극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차례가 왔다. ‘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의 이상득 의원과 ‘MB의 멘토’라는 최 전 위원장, ‘왕 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현 정권에서 대한민국을 주무른 3인방이다. 지금 이들의 운명은 ‘폭풍 앞의 등불’이다. 최 전 위원장의 구속 수감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거액 수수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 의원과 박 전 차관 역시 검찰청사의 포토라인에 설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번에 빠져나가더라도 검찰의 칼끝은 끈질기게 그들을 겨눌 것이다. 그게 검찰이다. ‘큰 것’에 걸리느니 ‘작은 건’으로 액땜하는 게 낫다는 말은 결국 칼끝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레임덕은 없다”고 했지만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해온 그들의 몰락과 함께 레임덕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레임덕은 정적(政敵)이 몰고 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이다.

권력은 스스로 부패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현 정권 실세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손가락질하는 차기 권력이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권력이 스스로 무너지는 바람에 5년 임기 대통령의 실제 임기는 매번 4년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거함이 선장도 없이 1년 가까이 망망대해를 헤맬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5년마다 돌아오는 이런 ‘되돌이표 푸닥거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하종대 사회부장 orionha@donga.com
#최시중#레임덕#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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