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에 이르러 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을 ‘발견’했다. 이때 비로소 타임(time)의 번역어인 ‘시간’이라는 말이 ‘때’나 ‘시각’을 대체하고 등장한다. ‘독립신문’ 창간호(1896.4.7)에 ‘우쳬시간표’(우편물 배당시간)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근대적 신조어인 ‘시간’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널리 유포된 시점은 1896년 전후라고 할 수 있다.
곳과 장소를 대체할 ‘공간’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른바 서구 용어의 번역어로 근대적 시공간이 탄생한 셈이다.
진고개목도평시계포 광고(‘제국신문’·1902.8.25·사진)는 단지 시계와 자전거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적 시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회중시계를, 왼쪽에는 자전거를 배치했다. 카피는 다음과 같다. “각국 시계와 좌죵(묵상 도구로 쓰이는 종)과 각색 자힝거(自行車·자전거)와 부속하는 물건을 허다히 구비하야 헐하게 파오. 또 이번에 쟝석을 더 두고 시계며 자힝거 파샹. 개조도 솜씨잇게 잘 하오.”
요약하면 진고개(泥峴·충무로) 시계점에서 여러 나라의 시계와 가지각색의 자전거를 많이 구비하여 싸게 파는데, 소비자가 원하면 자전거 개조도 마음대로 솜씨 있게 잘 해준다는 것이다. 요즘 자동차 마니아들이 즐기는 자동차 튜닝처럼 자전거 개조가 유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계와 자전거의 배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자전거는 왼쪽 방향으로 질주하는 형상이고 시계는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에서 시계를 꺼내보며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근대의 속도감을 보여주기에 손색없다.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서 묘사한 ‘13인의 아해(兒孩)’는 왜 거리를 산보하지 않고 질주했을까. 그 아이들은 혹시 보란 듯이 내달리는 당시의 폭주족이었을까?
우리는 이 광고에서 근대적 시공간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접목되었는지, 그 수용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서구 용어의 번역어인 시공간 개념은 물건(상품)의 사용을 통해 체화되었던 셈이다.
댓글 0